1.
수도 없이 찍었던 바코드. 길고 얇은 막대기가 알 수 없는 순서의 숫자와 함께 횡단보도처럼 붙어있는 작은 지도. 아무리 맛있고, 중요한 물건이어도 바코드가 없다면 그 물건은 팔 수 없다.
무언가 자본주의의 낙인 같은. 무채색의 바코드를 보고 있자면 답답해진다. 어떤 물건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모습이 다 똑같이 변해버린, 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를 보는 것만 같아서 그렇다.
모두가 가지는 것. 아무리 비싼 백화점의 명품 가방도, 500원짜리 껌도 바코드 앞에는 평등하다. 흑백의 줄무늬. 스캐너로 찍기 전까지는 바코드 안의 물건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른다. 수많은 바코드를 봤지만, 바코드와 그 숫자에는 분명히 각자의 의미가 있겠지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붉은빛을 내뿜는 바코드 스캐너는 알아본다. 마치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처럼, 스캐너는 숫자와 막대기의 조합을 알아보고는 모니터에 물건의 정보를 띄워낸다.
인식되고, 판매되고, 사용된다. 그렇게 의미 없는 박스 안의 짐 덩어리였던 것이 행복을 전하는 선물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사물에서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소중한 물건이 된다.
인식되고, 만나고, 함께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살덩어리였던 내가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서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위로가 된다.
2.
영수증을 항상 챙긴다. 인터넷 뱅킹이나 스마트폰 속, 은행 앱을 통해 충분히 나의 소비를 되돌아볼 수 있지만, 나는 영수증을 아직도 받아낸다. 소득공제를 위해서도, 가계부를 쓰기 위함도 아니다. 점원이 나를 속여 같은 물건을 여러 번 찍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도 아니다.
영수증은 그저 종이가 아니다.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 수많은 조합 중 하나인 유일한 종이이다. 가게에 진열된 제품은 다 같은 것들투성이지만, 내가 구매한 물건의 조합은 유일하기에. 나만의 기억을 담은 종이가 영수증이다.
영수증은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영수증 안에는 담기지 않는 나의 감정과 사람들을 적는다. 뒷면에는 짧은 일기를 쓴다.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그 순간의 감정은 어땠는지를 한 줄로 적고는 한다. 가장 가볍게, 또 가장 정확한 나만의 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옷 가게 영수증)(뒷면) ‘동생과 뿌듯함’-동생과 부모님의 생신 선물을 함께 사러 갔던 날
(편의점 영수증)(뒷면) ‘친구들과 가장 즐거웠던’-친구들과 강원도로 놀러 갔던 날.
언젠가 꺼내 볼 수 있게. 나와 함께 했던 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를 다시 한번, 알아볼 수 있게. 내가 무엇을 하면 행복했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게. 혹시라도 희미해져 버린 기억이라도 걱정하지 않게.
서랍 안에는 서로 엉켜버린 영수증이 가득하다. 하나를 꺼내 힐끗 꺼내 본다. 어느 가을날의 당신과 나누었던 기억이 적혀있다. 기억만으로도 마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