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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Sep 29. 2021

토라짐에 대하여

                                                         

 삐짐과 토라짐. 맞닥뜨리면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다. 상대방이 화가 난 것임은 맞지만, 그와 동시에 화내는 이유를 숨기는 행위. 나는 삐져버린 당신의 화를 풀어줘야 하고, 동시에 당신이 화가 나버린 이유도 생각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당신을 ‘화-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화났어?”라는 물음에 침묵, 또는 “화나지 않았어.”라고 답하는 당신. 그 모습은 어렸을 적, 나보다 더 어렸던 내 동생의 모습 같다. 5살 차이나는 동생. 동생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아기들은 항상 토라져 있다.

 말을 할 수 없기에, 아니 굳이 할 필요도 없다. 대단한 부모님은 다 알고 계신다. 왜 이 아이가 화났는지, 자신의 분을 못 이겨 숨이 넘어가도록 울고 있는지. 화가 남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알 수 없는 힘으로 화난 이유까지도 맞추신다. 우리는 그때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마음속 깊은 곳, 그때의 기억은 가지고 있을 터이다.   

  

 토라짐이라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세상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당신이 당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순간, 당신의 민낯을 보여주는 순간, 세상은 무정하게도 당신을 뭉개버리고 만다.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려온 것 마냥. ‘이제 어른이잖아.’라는 말. 그래서 당신의 껍질은 해가 갈수록 두꺼워졌으리라.


 처음엔 종이컵이었으리라. 당신의 마음을 가두는 무언가가 물렁물렁했을 때. 물 같이 흐르는 당신의 마음은 마음을 감싸는 종이컵을 조금씩 젖게 한다. 하지만, 종이의 틈새로 마음이 묻어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서서히 젖어간다. 

 그러나, 이미 자라버린 당신은 물을 내비치는 것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임을 안다. 수십 년간 배워왔다. 축축해진 종이컵은 수도 없이 버려졌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단단하고 불투명한 유리컵에 당신의 마음을 담았으리라. 마음을 내비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당신이다.

 당신의 마음을 내보이기 위해서는 깨져버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단 한 가지 예외는, 컵을 깨지 않고서도 컵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알아 봐주는 사람이 앞에 있을 때이다.   

  

 당신은 아이이다. 누구나 다 아이였고, 지금도 어른의 탈을 쓴 아이이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대어 마음 놓고 울고 싶고, 누군가에게 칭찬받으면 배시시 웃는 사람의 원형.

 토라진다는 감정은 자연스럽다. 아니, 어쩌면 고마운 감정일 테다. 그만큼 당신을 믿어서 나오는 행위이니까. 아무리 칭얼거려도 나를 떠나지 않을 당신임을 알기에, 오직 당신에게만 솔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을 알아봐 줄 것을 믿는다.

 아이를 대하듯 당신을 대한다. 당신 안에 숨어있는 아이를 만난다. 용서하고, 생각하고, 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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