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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Sep 03. 202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권력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모든 것을 정당화해왔다. 사랑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잘해주고, 때로는 싸우고, 어쩌면 때리기도 한다. 사랑의 이름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다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정확한 정의도 없다. 그저 그런 것이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가가기 어렵다. 사랑에 대해 이성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순간, 아름다운 사랑의 환상에 도전하는 일탈자가 된다. 함부로 평가할 수 없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어쩌면, 인류 이전의 감정. 사랑을 통해 탄생하고 번영한 인류. 그 거대하고 실체 없는 허상 앞에서 무기력해진 인간들은 사랑을 동경한다. 이해할 수 없고, 신비롭기만 한 사랑에 반기를 들 자신이 없는 인간들은 사랑을 사랑하기로 했다.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사랑은 스스로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우리는 결국 사랑이라는 권력에 편승하고야 만다. 우리는 그 거대한 실체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서 인류를 조종해왔다. 우리를 억압하는 주체이자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우리는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얻기도 했고, 많은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 자신의 삶과 같은 것들. 감정에 휘둘려 쉽게 잘못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남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환상 속 사랑만을 갈구한다.                





당신의 사랑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이 분리된 곳. 우리는 그곳에 산다. 그곳에서는 사랑을 주거나 받기만 한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사랑을 준다. 셀 수 없는 밤을 지새우고, 셀 수 없는 고민을 한다. 아이가 아프지는 않은지, 아이가 커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겪어본 힘든 일들을 피하게 만들고 싶어 하고, 자신들이 동경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부모는 자식에게 삶을 강요한다. 다 너를 사랑해서 하는 거라며, 사랑의 이름을 빌린다. 

 연인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사랑의 이름을 빌린다. 약속 장소에 늦게 나오는 것도, 너무 일찍 나오는 것 모두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사랑의 이름 아래, 내 사랑과 너의 사랑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삶을 강요받아 부모님의 사랑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연인들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민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읽기 힘들어진다.      

 나의 사랑을 한 번 쳐다보고, 너의 사랑을 한 번 쳐다본다. 우리의 사랑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너의 사랑이 나의 것만큼 크다는 착각은 내가 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구속한다. 너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나의 이해와 배려는 헌신과 희생으로 변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나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 당신에 대한 사랑을 채워간다. 권력은 불가항력이 되어 점점 밀려난다. 그 속에 나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나는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만 채워진다. 그렇게 나는 갈 자리를 잊는다.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랑          



 감정은 권력이 아니다. 동등한 주체에서, 권력을 빼고. 둘만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것. 나의 사랑을 내 안에서 꺼내어 너에게 보여준다. 똑같이, 너의 사랑을 나에게 보여준다.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을 서로 보고, 만지고, 느껴본다. 우리 외부의 사랑이라는 실체를 상상하고 나눈다. 

 나의 사랑을 꺼내고, 너의 사랑을 꺼내어 우리 밖에 사랑이라는 실체를 상상한다. 사랑이 있는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돈도 없고, 명예도 없으며, 권력도 없다. 그렇게 나타난 진정한 사랑. 권력이 아닌 감정. 솔직해질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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