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인혁 Oct 07. 2022

출판일기1. 두 번째 책을 써볼까 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이 될지, 사진이 될지, 영상이 될지, 광고가 될지, 영화가 될지 지, 그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그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 많고도 많은 것들 중에 하필 책을 고른 이유는 다양했다. 책이 좋은 이유는 수정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나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일이고,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상대방이 읽어야만 생명을 갖는 미디어라는 것이었다.

 한 번 인쇄가 되고 나서는 책을 찢어버리는 것 말고는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인쇄가 된 후로는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쉽게 사라지고 잊히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ISBN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숫자가 영원히 나의 것이 되는 일은 너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영상처럼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을 필요가 없다. 많은 이를 불러서 돈을 지불해야 할 일도 없을뿐더러, 오롯이 나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해나갈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개입해서 스토리가 달라지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랐다.

 영화는 우리가 제시한다. 상황과 흐름과 모든 것을 보여준다. 미장센과 배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글은 그렇지 않다. 글은 묘사를 할 뿐이지, 글로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글 자체는 죽은 것이라 생각한다. 읽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의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매력이 좋아서, 그래서 글을 썼던 것 같다. 


 첫 번째 산문집 <마음과 마음이 손을 잡을 수는 없을까>가 내 생각보다는 반응이 좋았다. 개인들이 구매해가기보다는 독립서점에서 많이 사갔는데, 내 책의 결이 대중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마이너한 나의 글은 도대체 어떤 글인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들, 특히 에세이 쪽을 살펴보면, 상당히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한 책들이 많다. 위로나 사랑이 특히 그렇다. 괜찮다거나, 사랑한다거나. 나는 그 책들은 싫다. 한 단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감정을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문학이라는 장르는 왜 있는가. 사랑한다는 감정 안에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얽혀있는데, 그것들을 풀어내고 보여주는 것이 문학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풀어서 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남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 되기도 한다. 많이 들었던 내 글에 대한 평가 들은 주로;현대미술 같다,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등이 있다. 나름대로 풀어서 썼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쉽기는 하지만, 대중들과 나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니까 이번에 쓸 시집은 조금 균형을 맞춰볼까 한다.



 그럼에도 구차한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글을 풀어보겠다. 

 파랑이 밀려든 갈라진 손가락 사이로
 괄호 안의 슬픔이 흘러요     
                                                                                       - 시 <어둠은 네가 지나가듯> 중

    > 갈라진 손가락 : 우리 손가락은 갈라져 있다. 손바닥에서 다섯 방향으로 갈라진다. 그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 괄호 안의 슬픔 : 괄호는 희곡 등에서 동작이나 분위기나 상태를 설명할 때, 보충하는 내용, 무언가의 내용이 들어간 자리임을 뜻할 때, 혹은 생략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때 사용한다. 이 시에서는 나의 마음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괄호이자 크게 보면 마음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마음 안에 슬픔이 마음을 넘쳐서 흐른다는 것이다. 손으로 쥐어낼 수 없을 만큼 흐른다는 뜻이다. / 파랑이 밀려든 : 그래서 결국 그 흐르는 슬픔이 모이고 모여서 파도를 만들어내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화자는 몸의 밖으로 흘려내기로 생각한 것이다.


 쉼표와 물음표와 괄호와 큰따옴표와 그보다 많았던 작은따옴표들과 그 안의 괄호 그 안에는 침묵의 목소리가 있다
                                                                                       - 시 <어둠은 네가 지나가듯> 중   

    > 화자는 잠시 쉬기도 하고(쉼표), 스스로 질문(물음표)을 던지기도 한다. 그에게는 마음(괄호)이 있었고, 외치고 싶었던 문장들(큰따옴표)도 있었다. 목소리로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큰따옴표)보다 속으로 생각(작은따옴표)했던 날들이 더 많았다. 생각(작은따옴표) 안에는 마음(괄호)이, 마음(괄호) 안에는 꺼내지 못한 진심(침묵의 목소리)이 있다.      


작은따옴표를 큰따옴표로 만들기 위한 일들 한 짝이 두 짝이 되는 일은 두 배가 아니에요 그 사이에는 수많은 물음표와 괄호와 쉼표와 느낌표들이 있어요      
                                                                                       - 시 <어둠은 네가 지나가듯> 중

    > 생각(작은따옴표)을 말(큰따옴표)로 꺼내기 위한 일들,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위한 일=한 명이 둘이 모여 서로가 되는 일은 산술적으로 두 배가 아니다. 서로가 되는 일 사이에는 수많은 물음과 마음과 머뭇거림과 강한 감정들이 있다.     


 내가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아무런 단어나 멋있어 보이는 단어만을 그저 배열해서 쓴 시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직접 풀어서 설명해본 건 처음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만큼 우리의 감정들은 소중하고 어렵다는 것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내 글에는 바람, 파랑, 노을, 문장부호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바람이나 파랑 같은 경우는 단어가 여러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흘러가는 바람도 있고, 내가 어떤 꿈이나 현상을 바라고 있다는 뜻의 바람도 있다. 파랑은 파란색과 파도의 뜻을 동시에 갖는다. 둘이 어울려서 더욱 좋다. 노을은 아름다워서 좋아하고, 문장부호는 쓰이는 기호로서의 의미 너머 다양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작은따옴표는 주로 혼잣말이나 생각을 표현할 때 쓰고, 마침표와 쉼표도 마찬가지이다.     

 직설적이지 않고, 감정을 최대한 빼려고 노력했다. 감정을 고조시켜서, 그 감정 그대로 담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감정을 털어내고 이성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문학에서 이성을 논하는 모양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감정을 너무 담으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벼운 글로 보인다. 그래서 남들이 읽을 때는 잔잔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읽는 사람의 감정과 공명하면, 그 안에서 깊이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저번에는 산문집을 썼는데 이번에는 시집을 써보려고 한다. 운문 한 권, 산문 한 권, 비문학 한 권씩 써볼 생각이다. 시가 더욱 어려운 것 같다. 묘사보다는 응축과 비유를 주로 사용해서 그런지, 단어 하나하나 고를 때마다 어렵다.

 


    그대는 소리 없는 바람이어라          


     아무런 기척도 남기지 않고서는

     언제 왔냐는 듯이 스쳐 지나기만 한다

     그대는 소리 없는 바람이어라     


     바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소리 없이 세상의 부산물만 날려댄다     


     그렇게

     하나의 바람으로 마주하지 못하고는

     이어지지 못한 우리를 마주하고는     


     고운 그대여

     그려오기만 했던 그대여     

     끝맺지 못한 마음으로 접어낸

     닿을 수 없는 그대여


 <그대는 소리 없는 바람이어라>를 제목이자 주된 느낌으로 가져갈 것 같다. 마음에 든다.


 큰 소리를 내며 시끄럽게 등장한 것보다 서서히, 우리가 느끼지도 못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더욱 무섭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 버리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존재를 알리지 않고 천천히 찾아온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남는 것은 먼지와 비어버린 우리의 마음뿐이다. 소리 없이 온 바람이 왔을 때 알아보고서, 그 바람과 함께 떠났으면,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렇다, 지나고 나서야 서서히 깨닫는다. 소리 없는 바람을 알아보지 못한 죄는 그때부터 천천히 받아야만 한다. 마음을 끝맺지는 못했지만, 접어야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대중들에게 맞추고 싶지는 않다. 최근에 뉴미디어 채널에서 인턴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는 당연히 대중들의 취향을 맞춰야 한다. 조회 수가 돈이고 실력이다. 하지만 내 책은 그렇지 않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쓸 거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더 쉽게 써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기존에는 관념을 주로 묘사했는데, 이번에는 시의 본질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볼까 한다. 첫 문장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시를 써봐야겠다. 표지는 하얀 바탕에 제목과 글쓴이, 바람을 표현할 있는 것을 중심적으로. 흩날리는 천이 적당할 같다. 



p.s.

 오늘 누가 그랬다. 미술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서로 현대미술을 비판적으로 보았지만, 하이퍼리얼리즘에 대한 의견은 달랐다. 나는 사진만큼 현실처럼 그려낸 하이퍼리얼리즘은 실력이라서 사진 같이 현실감 있게 그려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말했는데, 그는 하이퍼리얼리즘에는 개성이 없어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다. 개성도 중요했다.      

작가의 이전글 독립출판과 사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