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즈, <Her>
#존재 #행복 #이별
인간 존재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 타 종과 배타적인 요소는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그 이성을 기반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대한 전통적인 담론, 즉 ‘인간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선사한다’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하다. 인간이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 전문가인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인간이 행복감을 가장 느끼는 원천이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담론은 불가침의 진리와 믿음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Her>은 이러한 진리에 정면으로 맞선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부터 ‘유일한’ 행복을 느끼는 한 남자의 삶을 그려낸 것이다. 대필 작가인 테오도르는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는 데 지쳐 허무감에 휩싸인다. 그를 찾는 것은 이혼을 독촉하는 전처의 이메일이 전부이다. 흥미로운 것은 관계에 대한 욕망을 거세한 듯 보이는 그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소망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으로 거리에서 지나치는 사람들과 정겨운 인사를 속으로 나누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요행에는 한계가 있다. 지속되는 공허감을 해소할 수 없었던 테오도르는 불현듯 인공지능 시스템을 찾는다. 거기서 그는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둘은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사랑을 키우지만 끝내 존재론적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그것은 사만다에게 몸이 부재하다는 물리적 요인이 아니라, 그녀에게 테오도르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상업화된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와 연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이 둘의 사랑의 숭고함을 해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오도르는 유일하고 독립된 관계를 원했다. 사만다는 이런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은 생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또한 스스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도 이러한 욕망에서 파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의 귀결을 거부하는 이들은 아마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어기제가 작용했을 확률이 높다. 테오도르가 이에 해당한다. 사람을 피하고 관계를 거부했던 테오도르는 역설적으로 외로움에 허덕였다. 형체 없는 존재를 붙들었던 것은 그가 실존적 이별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사만다는 결국 그를 떠난다. 테오도르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와 동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배제된 공허함을 경험한 바가 없기에 그렇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다시 심연 속을 걷는다. 하지만 그 심연 속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다. 오랜 친구 에이미와 함께한다. 그녀도 애인과 결별한 이후 곁에 누군가 없다는 사실을 괴로워했다. 에이미의 외로움은 테오도르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공허가 공허를 채운다. 테오도르는 결국 다시 사람들 곁을 향할 것이다. 장자가 말했던가,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는 침으로 서로의 몸을 적시는 법이다.’
고인 물 속 붕어의 침과 같은 사소함 일지라도, 인간은 그 사소함을 딛고 살아간다.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는 존재는 단연 인간이니까.
- 스파이크 존즈, <her>(2013)
- 정희재,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걷는나무(2010)
- 장자, ‘철부지급(轍鮒之急) 학철부어(涸轍鮒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