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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현 Apr 08. 2022

욕망(欲望)

단어와 감정

@donnieraycrisp, Unsplash

 욕망은 가장 순수한 자기표현이다. 그렇기에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대한 담론은 자기 자신을 서로에게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창구이다. 단순히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을 넘어, 그 욕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자문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무엇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우선 나는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이 존재했고 몇 가지 이유들로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수년 동안 상한 자존심을 움켜쥐어야 했고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했다.


 그때 내게 엄습한 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단 한순간 실패하면 이후의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리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말이다. 원치 않는 삶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벵갈 호랑이가 처한 현실과 같은 것이다. 집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이빨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한 상태 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어떠한 끈질김도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지나며 가장 크게 깨달은 바는 생에 대한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그리 처절해 보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가능성이나 결과와 상관없이 말이다. 욕망하는 삶에 대해, 삶에 대한 순수한 노력에 대해 건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미련한 것이다. 얻지 못한 포도를 앞에 두고 그것이 사실은 너무 시어 맛이 없었을 거라 자위하듯이. 맛보지 못한 포도가 내 머릿속 깊숙이 자리해 수없이 반복하며 나를 괴롭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생을 대하는 맹수의 모습을 닮기로 했다.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망망대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의 무대에서도 본능적인 야성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야성은 소년과 자신을 생(生)에 내걸어지게 만들었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힘, 그리고 생을 향한 동물의 끈질김은 타 종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야성을 닮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이루고 싶은 삶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나는 타인과 공유하는 삶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나이와 배경, 성별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싶다.


 욕망을 나누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의 단면을 공유하며 그렇게 서로의 삶에 대한 증인이 되고 싶다. 내 삶에 대해 아무도 증언해줄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욕망의 규모나 결과에 관계없이 내 삶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길 원한다. 그렇게 나의 두 가지 욕망이 보조를 맞춰 내 삶을 아름답게 이끌기를 바란다.

                                        


- 욕망하는 삶에 대해, 2021

-  마텔,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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