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현 May 21. 2022

실존주의, 그리고 공동체

21 수원시 장학생 수기공모, <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다.>

@john_cameron, Unsplash

#사회 #개인 #삶


 밀란 쿤데라는 그의 저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삶을 마주한 인간에 대해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와 같다고 묘사합니다. 대본이나 동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극이 시작된다면 배우는 눈앞이 캄캄할 것입니다. 삶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저 또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로 사는 삶이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교육비를 걱정해야 했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질병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는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크게 느꼈습니다. 거리는 활기를 잃었고 텅 빈 학교는 기나긴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시장가에서 작은 누룽지 가게를 하는 부모님은 큰 타격을 입었고 가족들은 불안을 나누어 가져야 했습니다.


 작년 5월, 1차 확산 이후 전염병의 위기가 본격화되었을 때 저는 군에서 전역했습니다. 자유의 몸을 얻어 이런저런 계획들을 이행하고자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음을 깨닫고 바로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으로 인해 시장가에 유동인구가 감소하자 부모님의 수입이 반 이상 줄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업 실패와 건강 이상으로 어머니의 일을 간헐적으로 도우시던 참이었습니다. 이에 홀로 학비를 벌어 생활하는 대학생 동생은 주말 편의점 알바와 전공 관련 업무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저 또한 가족이 감당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전역과 동시에 일을 택한 것입니다. 일주일 중 삼일을 편의점 야간 알바로 버티며 받는 수익으로 가족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했습니다.


 수원시 장학 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된 시기는 이러한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이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안겨준 삶에 적응했고 낮은 수익과 적은 만남, 그리고 욕심에 대한 관리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곧 끝이 나리라 믿었던 질병의 확산세가 이어졌고 모두가 힘들었기에 변화한 삶을 감내한 것입니다. 당연하다고 해서 힘이 들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분명 저희 다섯 식구에게는 힘겨운 계절이었습니다.


 그 시기 저는 수입을 늘려보고자 대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 사이트를 배회했습니다. 여러 사이트를 두루 둘러보다가 친구의 권유로 수원 시청에서 관리하는 여러 장학 체계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때마침 장학 재단의 선발 계획을 접했습니다. 이후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여러 번 문의하며 자격요건을 확인하고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제 모든 문의에 친절하게 답해주셨던 담당자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행정복지 대상자를 대하는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지 않더라도 좋은 경험으로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발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았습니다.


 사실 장학생이란 명목으로 저 자신을 설명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시나 도청으로부터 받았던 여러 지원에 대해 담임선생님의 책임감 있는 배려를 받지 못했습니다. 친구들 틈에 있는 저를 보고 대뜸 학교의 견학 프로그램에 지원비가 필요하냐고 물었던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급식비 영수증을 나눠줄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제 이름을 빼고 부르신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적지 않은 상처를 받은 바가 있습니다. 저를 따로 부르셨더라면, 반장을 통해 영수증을 나누어주셨더라면 하는 생각이 오래 남았고 친구들로부터 궁금증을 사는 게 싫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어린 나이에 금전적 지원의 무게와 자존심의 상처는 등가교환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청서에 작성해야 하는 여러 내용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저의 가난을 파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복지센터 담당자님의 친절한 안내와 여러 권유를 통해 이러한 부담감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장학금이라는 명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취약계층 지원 사업’이라든가 ‘불우 이웃 돕기’와 같은 이름으로 지원을 받았다면 내내 마음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장학금의 취지와 사업의 투명성을 알게 되자 마음이 놓였습니다. 금전적 지원 여부를 떠나 나의 학업과 미래 가능성을 수원시가 응원한다는 생각이 들어 들떴습니다. 차분하게 신청서를 작성하였고 사실에 근거하여 내용을 채우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장학금 사업이나 국내의 시, 도에서 진행하는 여러 복지사업에 제가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 더 당당하게 지원받을 수 있고, 또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경로로든 제가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이 글의 제목을 ‘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다.’라고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밀란 쿤데라와 비슷하게, 하이데거나 키르케고르를 포함한 현실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생에 던져진 존재’,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인생은 B(Birth, 태어남)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명구도 이러한 현실주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고 삶은 홀로 하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철학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세상에 홀로 던져진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은 좋은 선택을 이끌 정보도 능력도 쉽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원시 장학 재단의 선발 과정을 함께 하며 현실주의 철학과 반대되는 공동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공동체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흩어지는 것이 연대’라는 역설적인 구호는 서로의 안전한 삶을 위해 노력을 모으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비단 질병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은 원래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언젠가 읽었던 책으로부터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게 프로그래밍 되었다’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사람인(人) 자가 서로 기대어 올곧게 서 있는 모습에서 기원했듯이 말입니다. 장학 재단의 도움을 통해 이러한 함께 사는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아가서 학창 시절 제가 받았던 상처로 인해 깊게 느끼지 못했던 여러 지원 사업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고 제가 성장한 수원시와 한국이라는 사회는 제게 굳센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감상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저는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 되어있길 원합니다. 군 복무 시절 우연히 알게 된 단체로부터 선행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병이었던 당시 적은 월급에서 삼만 원을 떼어 전역할 때까지 기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전역 이후 어려운 실정에 기부 액수를 줄였습니다. 장학금을 지원받는 시기에는 그마저도 줄여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체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도움받고 도움을 주는 것이 양립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미래에 그렇게 경제력이 탄탄한 사람이 되어있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노력을 다하겠지만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으니까요. 그러나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약속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부연하자면 나눔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저는 문화콘텐츠 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콘텐츠산업에는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직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웃음을 주거나 감동을 주는 일은 세상에 무관심하고 건조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두루 보고 많은 이들을 안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으로부터 제 공감 능력이 늘어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따뜻한 시선을 안겨주었던 어른들과 친절과 기대를 거두지 않았던 분들이 함께한 삶입니다. 수원시 장학 재단의 도움도 제게는 큰 힘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외롭고 날카로웠을 제 삶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 수원시 장학생수기 공모,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