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기
반 년이 가깝게 지나간 시간들을 거슬러 기록하는 이 행위가 내 삶을 참 살만하게 만든다. 아직 기록하지 않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여러 선택과 결과가 있었다. 난 참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N’이라 그런지 후회를 할 적에는 늘 망상도 함께 한다. 몇 살로 돌아간다면, 그 때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뭐 그런 것들. 그러나 이 모든 망상의 의미를 불식하는 것은 그런대로 내가 잘 살아왔다는 사실과 이를 증명하는 주변 사람들의 존재가 아닐까.
2023. 9. ~ 2023. 12.
버디, 나의 친구들에 대해 꼭 적고 싶었다. 갑자기 찾아와 나의 시간들을 더없이 의미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 우리는 많은 곳들을 함께 다니며 걸었고 대화했고 각자의 삶에 파장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갈 길이 급할지라도, 신발에 밟히는 사각거리는 눈밭을 무시할 재량이 나는 없다. 그 눈밭에 눕고 싶어졌다. 활발하고 착한 나의 버디 Bent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그 틈에 어느새 나도 속해 있었다. 그의 손에 이끌려 많은 친구들과 관악산을 등산했던 날 이후로 나는 자주 그들과 함께 했다. 할 일은 많았고 여전히 고민은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친구들과 함께 근사한 일탈을 감행했다.
지난 1년간 나는 내 삶을 추동하였던 언론과 강한 집착이었던 연세대학교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인천대학교에 왔다. 생각하지 못했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삶은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자 했고 길을 정하지 못했던 나는 계속 발버둥을 쳤다. 지난날 나는 연세대학교 언론홍보학부에 진학하기 위해, 학사경고를 받았던 학교에서 재수강을 거듭하며 3.9의 학점으로 3학년을 수료했다. 동시에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로 신촌 소재의 논술학원 학비를 충당하며 공부했다. 두 해를 거쳐 시험을 봤고 최종 시험에서 예비 2번을 받고 탈락했다.
늦었던 대입과 수험 그리고 편입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몸과 마음이 너무 닳아 있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삶을 재정비해야 할 때라고 느꼈다. 인천대학교 무역학부는 그런 내게 손 내밀어 주었다. 그럼에도 닳고 닳은 몸과 정신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전공을 대하는 내 오만했던 자세의 이면에는 무시당할까 두려웠던 자기방어가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색한 공부를 대하며 열정을 키우기보다는 냉소적이었고 이에 따라 발전이 더뎠다. 첫 학기는 C 밭이 되었다. 그러나 여름 방학에 이르러 북경 이공대 친구들을 만나며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미래를 위해 남은 학기들은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최고란 참 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이다. 나는 최상의 학점을 받아 최고가 돼볼까 싶었던 것일 뿐,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하기 위해 눈앞의 낭만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과 많이 놀았고 우린 참 가족 같았다. 스무 명이 넘는 카톡 방에서 누군가를 부르면 대여섯 명이 금세 눈앞에 나타났고, 기숙사에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하루는 인하대학교에 다니는 막냇동생이 놀러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인연은 이어져 있다. 가까운 미래에 유학을 갈 예정인 동생에게 인연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 정도로 이 친구들이 좋았다. 함께 밥을 먹고, 고민을 나누고, 각자의 시선을 공유하며 나의 삶에 많은 힌트를 얻었다.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것은 성공으로 정의되는 결과의 축적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러한 삶을 진정 바란다면 효율적으로 결과를 이뤄가는 방법을 택하며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자의든 타의든 효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정거장마다 멈춰 서는 시내버스나 외국인을 태운 택시처럼 돌고 돌았다. 이제 와 이러했던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 삶이 점차 마음에 들었다. 삶을 결과가 아닌 지향으로 말하고 싶어졌다. 생각의 끝은 미래를 향해 있어도, 사금석을 채취하듯 하루의 의미를 건져내고 싶었다. 너희와 함께 보낸 시간이 그러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고마웠어.
Spotlight, 이어질 너희의 삶에 광명이 비치길 바란다. 하루의 끝에 기도할 사람이 오랜만에 늘었다. 기도빨을 위해 가끔은 영어로도 해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말했듯이, 인연은 이어진다. 어쩌면 무역관이 되어 가까운 거리에서 일할 날이 올 수도 있고 Stefan이 말했듯이 우리가 같은 회사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인 것처럼 슬프게 추억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 둘 떠나보내며 많이 울었던 그대들이 생각이 나 하는 말이다. Asmae와 QQ 그만 울고, Anna와 Elza! 우리 겨울 왕국 모임도 계속될 거야. 어리지만 성숙한 Helen과 상담가 곤자 누나, 핸섬가이 Ricky도 안녕. 공주병 걸린 Mariela도 스페인 가서 치유하길 바라고. Arne, 대학원 수고하고. Lea는 Asmee에게 플러팅 기술을 배우길 바라. 내 부족한 언어를 감싸 안아준 수현 씨나 수빈 씨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Bent에게. 공항에서 준비한 것처럼 꺼냈던 말은 사실 내가 오래 생각했던 바야. 불능이라 느껴졌던 삶의 시간들도, 갑작스레 오게 된 인천과 낯설었던 모든 것들도 너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아. 너를 만날 수 있어 참 좋았어. 너에게는 참 공감하기 어려웠을 나의 고민들도 주의 깊게 들어주고 대화해 줘서 고마웠어. 오지 않을 것 같던 내일이 와버렸어.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어제들은 내 삶에 오래 남을 거야. 꼭 다시 보자. 너의 Part 2 Life를 멋지게 보내고 있길 바라. 그때는 네가 내 버디가 되어줘야지.
그리고, 고민 끝에 곤자 누나와 약속했던 <배반>의 E-Book(전자책 버전)을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를 남긴다. 전자책에는 다른 수상작들은 물론 김미월 소설가의 심사평, 나의 수상소감과 본 소설이 담겨있다. 여전히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이 가득하다. 그러나 내가 쓴 소설과 마찬가지로 내가 지내온 생애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 확신의 표현을 이 소설로서 갈음한다.
2024년 현재에 이르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나의 한 학기를 망치러왔던 구원자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