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결말 재해석

양귀자, 『모순』

by 인현

『모순』, 양귀자 쓰다(2025)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1. 줄거리


핵심 인물


양귀자의 역작 《모순》은 갓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20대 여성 안진진의 성장 서사이자, 선택이 갈라놓은 삶의 단면을 비추는 전시장과 같은 이야기다.


주인공 안진진은 가난하지만 자기 삶을 비관하는 힘으로 버텨온 어머니와, 부유하지만 불행한 이모 사이에서 자라난다. 같은 중매로 시작했으되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 두 사람의 삶은 진진에게 ‘행복’과 ‘불행’이 얼마나 쉽게 뒤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본이었다.


한편 아버지의 부재는 진진의 삶에 오래된 결손으로 남았고, 그 빈자리는 어머니의 투박한과 이모의 보살핌으로 채워진다. 진진은 두 사람의 삶을 통해 알게 된다. 인생에 대한 성실한 탐구와 냉철한 준비가 결코 구원이 되지는 않으며 가난이 곧 불행을, 부유함이 곧 행복을 이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처럼 삶은 언제나 모순을 허락함으로써 균형추를 맞춘다.


선택의 분기점


성인이 된 진진 앞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감정에 솔직하고 불안정하지만 사랑을 그려낼 수 있는 남자 김장우, 안정적이고 성실하며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진 남자 나영규. 진진은 이 선택 앞에서 사랑과 평화, 욕망과 당위를 동시에 저울질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더 사랑하는 쪽이 아닌 더 버틸 수 있는 쪽을 선택한다.


결말 구조


소설은 질문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전시할 뿐이다. 어떤 삶은 선택이 아니라, 반복의 굴레를 끊기 위한 도박에 가깝다는 사실을, 불쾌하지 않게, 덤덤하게.


@jaymantry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 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름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지고 마는 거야.....


2. 해석과 판단


논점 1. 사랑을 ‘당위’로 설명할 수 있나 (feat. 널 사랑해서 헤어지는 거야)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단 한 번도 정확히 읽히지 않는 텍스트였다.


머릿속에 계산기를 넣어 가지고 다니는 남자. 이 남자 나영규와 앉아있으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현실이 보인다. 너무나 일목요연해서 어디 제멋대로인 꿈이나 상상 같은 것은 전혀 끼어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삶의 무궁한 모순들은 언제나 실낱같은 가능성으로 존재하되, 인식하게 될 때에는 감당하기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이모와 엄마의 운명을 가른 중매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였으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두 사람의 삶이 가진 모순의 무게는 둘 모두에게 버거워졌다.


‘사는 것 같은’ 삶은 바랐던 부자 이모와, 자신의 삶을 비관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삶의 동력을 얻었던 가난한 엄마의 삶은 모순적이다.


아, 삶은 그런 그런 것인가.


눈앞의 모순을 판단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으니 결국 그 모순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일까.


논점 2. 당위로 설계된 삶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젊어서는 그렇게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아니다.


지리멸렬한 현실은 그 자체로 위협이고 영혼의 상처이며 누군가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온 생애의 굴레와 같은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모순을 관조하라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조언이다. 나는 안진진이 김장우를 선택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용감한 선택을 하길 바랐다.


생의 외침처럼 쏟아냈던 다짐과 각오는 그가 사랑이든 당위성이든 설계되지 않은, 저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각오가 굴레를 벗어던지고 타인의 운명에 휘둘리지 않는 진진의 삶을 살게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형이 잠든 사이에 양말을 빨아두는, 아버지와 같이 읽히지 않는 텍스트와 같은 그를 외면했다. 줄곧 아버지와 김장우를 오버랩되게끔 배치한 서사적 장치는 안진진이 나영규를 선택하는 당위성을 형성하기 위함이었을까.


김장우가 가진 삶의 태도와 이야기가 아버지의 그것과 닮은 것은 무의식 속 아버지에 대한 안진진의 그리움을 심화시킨다. 이모와 닮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란 존재 모두가 안진진에게 모순이다.


논점 3. 불안정한 행복보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로 하다


“아버지처럼 순식간에 행복을 불행으로 바꾸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었다”


화살표가 어긋날 것’을 두려워하는 출연자들이 최선책 보다 차선책을 더 많이 선택한다는 것을.


그리고 모순은 종국에 이모와 아버지 둘을 잃게 만들었다. 어머니도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모순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더 사랑하는 쪽’을 포기했다.


물론 믿고 싶지 않은 선택이다. 다만 진진은 가져본 적 없는 지속적인 행복을 탐하지 않았을 뿐이다. 불안정한 행복보다는 비극을 확실하게 되풀이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온 생애를 걸어.


내 생각에 작가는 아주 늦게, 진진의 선택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은 작가가 아닌 진진이 한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종이 위에 쓰인 존재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한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김장우가 준 행복의 편린들이 진진을 또 다른 선택으로 이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었다면 해질녘의 푸른 어둠을 두려워하는, 끝끝내 손을 맞춰보지 못한 아버지와의 화해를 김장우가 대신해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영규를 선택했다. 그녀에게는 삶의 모순을 관조할 만한 여유가 없었고, 지리멸렬하고 비극적인 삶의 관성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이제껏 살았던 삶과 다른 삶을 선택한 것이다. 아니, 선택이라기보다는 서글픈 도박에 가깝다. 자신의 삶에서 되풀이되어서 안 되는 것들을 단정 짓고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선 그녀의 결정은, 그래서 시리도록 아프다.


김영하 작가가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는 문장을 썼다. 나 또한 이 표현이 인생을 함축한다고 생각한다. 표적을 빗나갔을 지라도 끝내 각자의 생으로 명중하는 것. 진진이 그 빗나감을 용인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삶은 많은 가능성들 중 극히 일부만을 상수로 허락한다. 진정 삶을 즐기는 이들은 허수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 아닐까. ‘모순’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비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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