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현 Oct 29. 2021

따뜻한 가족 서사 이면의 학벌주의 민낯

신원호, <응답하라 1988>

@他年, pintereset


#학벌 #교육 #추억


 “어마어마한 역사적 일들을 소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경험했을까.”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1988>을 구성하며 던진 질문이다. 이제껏 <응답하라> 시리즈를 모두 성공적으로 연출하며 능력을 입증한 그조차 1988의 시대적 배경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문화적 개화와 고도성장,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중심에 민주화 운동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가족 이야기에 너무 큰 정치적 이슈들이 들어서지 않도록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제한했다고 말한다. 드라마의 정체성은 가족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적 침묵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88>이 감추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학벌주의에 대한 열망이다.


 학벌주의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줄곧 감추지 못했던 낡은 이상이다. 현대 사회의 개방성을 논하기 이전에 <응답하라 1988>에 담긴 학벌주의는 서사적 측면, 현실적 측면, 그리고 수용적 측면에서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먼저 서사적 측면에서 학벌주의는 인물의 성격과 극의 흐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예컨대 정봉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6 수생이다. 우표 수집, 오락실 게임, LP판 등을 수집하는 것에도 흥미가 있고 음식에 대한 조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특히 우표 수집이라는 취미는 올림픽 복권 당첨으로 이어지며 가족들을 가난에서 일으킨다는 점에서 서사적 정당성을 획득한다. 음식에 대한 조예는 향후 그가 요식업계의 대부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특성이 된다. 그러나 7수의 끝에 단 6개월을 공부하고 성균관대학교 법대에 진학한다는 설정은 앞선 정봉의 성격과 이후의 서사를 고려할 때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색한 요소이다. 정봉의 성격을 차치하더라도 정봉이 학교에 진학해야만 하는 결정적 동기나 합격을 위한 노력의 서사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이는 정봉 이외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진로 선택 과정과 미래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우수한 학벌과 직업적 성공은 기본인 양 소비되었다. 덕선의 경우 극이 한참 진행되는 1989년의 시점에서까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으나, 어느새 언뜻 스튜어디스가 되어있다.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도 과정도 제시되지 않았다. 심지어 직업과 관련한 이후 에피소드도 제시되지 않은 채 택과의 이벤트에 사용될 뿐이었다. 연세대학교 의학과에 진학한 선우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정환의 서사도 마찬가지이다. 직업을 향해 가는 과정의 힘겨운 노력이나 에피소드가 제시되지 않은 채 자연현상처럼 우수한 학벌과 성공한 직업을 얻는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당위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따라서 <응답하라 1988>에 내포된 학벌주의는 서사적 측면에서 정당하지 않다.


 둘째로 현실적 측면에서 학벌주의는 당대 상황을 성실하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될  있다. 19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30% 불과했다. 올림픽과 민주화운동이 함께 있었던 문화적 개화와 고도성장의  축에서, 대학 일변도의 성공주의는 현실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경제 성장률은 평균 7.5% 육박했으며, 특히 드라마의 서사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1980년대 후반에는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고속 성장과 국가 기반산업의 등장은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높은 고용률을 기반으로 사회는 다양한 유형의 직업군을 원한 것이다. 그러나 <응답하라 1988>전문직을 성공의 모형으로 제시하기 위해 학벌을 소비한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채, 극을 특정 누군가들을 위한 추억처럼 보이게 했다. 시대적 상황과 다양한 담론들을 충실히 반영해내지 못한 것이다.


 셋째로 수용적 측면에서, 학벌주의에 천착한 드라마의 이상 시청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경우에 시청자의 감정과 교육적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응답하라> 시리즈의 학벌  성공주의는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된 이상이다. <응답하라 1994>에는 천재 의사와 메이저리그 선수가, <응답하라 1997> 대선주자와 판사가 주인공 ‘짝사랑하는’ 서사이다. <응답하라 1998>에서도 연세대학교 의대와 공군 사관학교에 진학한 수재들과 천재 바둑 기사가 주인공 덕선의 남편 후보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출신의 성보라가 있다. 연작의 반복적인 학벌주의적 서사는 엘리트와 예체능 스타의 조합으로 인물을 구성하는 것에 정형화되었으며, 이러한 정형화된 구성은 우수한 학벌과 성공한 직업을 갖춘 이들만의 추억이 가치 있는 것이냐는 반문을 낳는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학벌주의 이상은 이미 극심한 경쟁체제에 살고 있는 MZ세대에게 잘못된 의식을 교육할 가능성이 있다. 증명된 수많은 반작용에도 불구하고 학벌주의가 정답인 양 잘못된 이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개방적이다. 개인의 능력을 판단한 요소들은 학벌이 아닌, 다변화된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대상이 된다. 이러한 반 사례에도 불구하고 학벌로 집안을 일으키는 영웅적 서사들은 잘못된 가치를 학습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화에는 현재 시점에서 덕선과 택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는 덕선의 질문에 택은 망설임 없이 아니라고 답한다. 그 시기를 지난 모두가 그럴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한 아름다운 추억은 그들이 보낸 과거의 전부가 아니다. 성공을 향한 시대적 열망과 자식 하나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뒷바라지에 부응해야만 했던 자식 세대의 부담이 나머지를 채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트가 되어 비로소 성공했지 않은가. 그러지 못했던, 혹은 그럴 수 없었던 이들의 과거는 누가 위로해주어야 하나. 그리고 로코 열풍에 안방극장을 찾은 다음 세대에게, <응답하라 1988>에 내포된 성공신화는 과연 적절한 학습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 <현장메모: “5 공비리, 쌍문동, 곤로”, ‘응팔’이 다룬 추억>, 《한국일보》, 2015.11.05.

- 백소연, 가족이라는 레트로토피아 - 텔레비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중심으로, 한국극예술연구 65, 2019.9

- 김진호 기자, 경제성장 80년대 7.5% 2010년대 2.3%… 이유는 생산성↓·노동시간↓, KBS NEWS 2021.01.21

- 김용일, 한국 교육의 현황과 민주진영의 과제, 기억과 전망 17호

작가의 이전글 밤을 사는 사람들의 초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