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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19. 2021

엄마가 웃는다_1

파리에 가서 로댕도 보고, 찐한 키스도 할까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열대야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다. 모두 처음 맛보는 무더위다. 에어컨 없는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히히 웃으며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꽁초를 던지고 창을 올리고 에어컨을 켠다. 새벽 2시가 막 지난다. 역삼동 뒷골목은 아직도 불야성이다. 나는 마지막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 여자만 실어 나르면 오늘 일은 끝이다. 하루 몇 만원 벌기가 이렇게 힘든데, 두어 시간에 수백만 원을 쓴 남자들이 여자에 안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쏟아져 나온다. 나에겐 꿈이 있다. 엄마만 없었다면 벌써 이루고 다른 꿈을 꾸었을 텐데, 착잡하다. 로댕의 키스를 본다. 언제나 그렇듯 사진 속 남녀가 흥분시킨다. 2시 10분이다. 클랙슨을 때리고 싶다.


여자가 차문을 연다. 그녀는 남자 없이 혼자다. 만취한 듯 중얼대며 비틀거린다. 백여 미터쯤 달리다 신호에 걸린다. 차가 멈추자 그녀는 내 뒤통수에 구토를 한다. 시큼한 위액 냄새와 술 냄새가 차안에 퍼진다. 물컹한 과일덩어리가 목 뒤에서 만져진다. 차를 갓길에 세운다. 짜증이 일지만 참는다. 수건과 물병을 건넨다. 그녀는 입가를 닦고 물로 입안을 헹군다. 차문을 열어주자 물을 내 발 앞에 뱉는다. 나는 머리칼에 묻은 토사물을 털어내고 시트를 닦는다. 차안에 퍼진 고약한 쉰내는 그대로다. 차문을 모두 열고 그녀를 본다. 왠지 애처로워 보인다. 주머니에서 페퍼민트사탕을 꺼내 그녀에게 내민다. 사탕케이스에 새겨진 입안을 상쾌하게 해준다는 문구를 보여준다. 그녀가 재채기하듯 풋 웃고는 고개를 쳐든다. 창호지 같은 낯빛에 실핏줄 터진 흰자위, 힘겨워 보인다. 살구색 입술이 열리며 하얀 이가 드러난다.

“아 졸라 힘드네. 술 진짜 싫다. 야! 너 술 잘 마셔?”

나는 취한 적이 없다. 술주정에, 그래 나 잘 마신다, 답하기 싫다. 그녀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본다. 눈길을 피하자 그녀는 차에서 내려 자꾸 눈을 맞추려고 고개를 들이민다. 그녀가 짐짓 미안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너, 오늘부터 내 전속운짱해라. 평일 밤만 2시, 따따불 줄게. 오케이?”

“좋네. 좋아.”

그녀가 먼저 말을 놓았기에 나도 말을 놓는다. 그녀는 나보다 서너 살쯤 많을  같다. 나는 그녀를 자세히 살핀다. 빛바랜 청바지와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었다. 군살 없는 몸매에 피부는 아이처럼 곱다. 푸르스름한 핏줄이 피부에 비친다. 입술 가까이 잡히는 보조개가 매력적이다.  시선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녀는 나를 슬쩍 올려다보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다. 나는 내가 사는 연립주택 주인의 벤츠로 밤에만 업소에 나가는 여자들을 실어 날랐다. 차를 빌린 값을 치르고 기름을 채우고 나면  손에 남는   만원도  됐다. 그녀는 로또 4 같은 행운이다.

“변태의사새끼가 냄새나는 혓바닥 날름대며 날 구원해주겠대. 미친놈. 사는 거 진짜 지긋지긋하다. 넌 사는 거 재밌니?”

백미러로 그녀를 본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시선을 피한다. 그녀는 다리를 가슴께로 당기고 고개를 파묻는다. 나는 엑셀을 천천히 밟는다. 백미러로 그녀를 훔쳐본다. 그녀는 긴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몸을 옹그리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파묻고 말이 없다. 어쩌면 그녀도 나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매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는 건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다. 그녀가 만원을 어깨에 대고 흔들며 커피를 사오라고 한다.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운다. 문을 열자 엄청난 소음이 지나간다. 커피를 계산하며 창밖을 내다본다.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지금 죽어도 좋아, 오토바이의 굉음이 귓속에 맴돈다. 커피에 시럽을 넣고 스트로를 챙긴다. 그녀에게 커피를 건넨다. 그녀는 비틀대며 차에서 내린다. 인도 끄트머리에 주저앉으며 나에게 손짓한다.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커피를 빨아 마신다. 그녀 어깨가 내 어깨에 무너진다. 나도 사는 거 지긋지긋하다. 동의를 해주려다 하지 않는다. 대신 등을 토닥여 주려고 손을 뻗는다. 손이 등에 닿자 그녀가 발끈한다.

“내 몸에 손대지 마. 허락하기 전까진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돼.”

손바닥에 시럽이 묻어 있다. 바지에 손을 문질러 닦는다.     


와이셔츠가 등에 쩍 달라붙는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힌다. 8월 중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못내 얄밉다. 뜨거운 햇볕을 피할 길이 없다. 아침부터 지쳐버렸다. 지금 당장 소나기가 내리거나 밤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서럽고 억울하다. 지갑이 얇아지면 마음은 종이처럼 약해진다. 작은 일에도 잘 구겨지고 잘 찢어진다. 이미 지쳐버린 발걸음은 족쇄를 찬 듯 무겁다. 역삼동 빌딩 숲 속을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다. 10시 10분이 막 지났다. 엄마 아침밥을 챙기느라 오늘도 지각이다. 창문과 방문은 열어놨지만 선풍기는 끄고 나왔다. 100년만의 폭염이다. 엄마가 올 여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무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회의실 쪽 뒷문을 열고 사무실 안을 들여다본다. 아침 조회를 위해 모든 직원이 일어나 있다. 보타이를 맨다. 보타이는 메뚜기라는 계급장이다. 한 시간 후 보타이를 풀고 나가면 아무도 찾지 않는 메뚜기라는 표식이다. 나는 기어가듯 몸을 낮추고 들어가 책상 앞에 선다. 부장의 날선 눈빛이 조준한 총구처럼 쫓아다닌다. 숨이 턱 막힌다. 전쟁 같은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단상 앞에 사장이 선다. 그는 자랑하듯 롤렉스시계를 흔든다. 험험, 목을 가다듬고 두 손을 치켜든다. 그가 선창한다.

“가난은 죄다! 가난은 죄다!”

사무실은 순식간에 콘서트무대 같은 열기로 가득 찬다. 부장들은 맨 앞줄에 나와 눈을 부릅뜨고 조원들에게 돈에 대한 욕망을 불어넣는다. 직원들은 주먹으로 허공을 찌르며 구호를 외친다. 백여 명이 함께 외치는 함성이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린다. 이제 직원들은 돈을 벌기 위한 최면상태에 빠져야만 한다. 사장이 어제 계약서를 쓴 4조 욕쟁이아줌마를 부른다. 전무가 그녀에게 돈바구니를 전달한다.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직원들 모두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녀는 사장을 끌어안아 뽀뽀를 하고  돈바구니를 흔들어 보인다. 5천만원이란 돈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장난감 지폐 같다. 사장이 욕쟁이아줌마 엉덩이를 툭 치고 사무실을 나간다. 직원들 모두 내일의 욕쟁이아줌마가 되기 위해 부리나케 전화기를 잡는다. 나도 앞과 좌우가 칸막이로 막힌 책상에 앉는다.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전화번호부와 연필을 챙긴다. 전화번호부를 펼치자 손바닥에 땀이 밴다. 숨이 가빠온다. 사람들의 열기와 싸우는 듯한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곳에 출근한지 삼 일째다. 오늘부터 일급 만원이 나온다. 이틀이 이주일보다 길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무작위로 전화해 부자가 되고 싶으면 땅을 사라 소리치면 된다. 기싸움에서 지면 절대 땅을 팔 수 없다고 사장은 강조했다. 큰 목소리로 싸우듯이 상대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속사포처럼 말해야 한다.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모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전화해 땅을 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는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는 부장친구에게 시선이 간다. 친구는 이 일을 쉽게 설명했다.

“그냥 눈치껏 전화하는 척만 해. 열시 출근 네시 퇴근, 빨간 날 다 쉬고 주 오일. 일급 만원에 한 달만 버티면 월급 이백. 죽이잖아. 땅 못 팔았다고 짤리면 그때 메뚜기 뛰면 돼. 이런 데 강남에만 이백 개 넘는다. 한두 달씩 메뚜기 뛰는 아줌마들 수천이다. 참고 한 달만 딱 버텨.”

그랬다. 나는 굶더라도 엄마 끼니만큼은 해결해야 했다. 나는 정말 한 달이라도 버티고 싶다. 하지만 전화기를 보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등 뒤에서 부장이 눈을 흘기며 지나간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 댄다. 아무 번호나 누른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한숨만 나온다. 다른 조 부장이 등 뒤를 스쳐간다. 등에서 주르륵 땀이 흘러내린다. 식은땀이 팬티까지 적신다. 부장은 좁은 틈 사이를 오가며 땅팔기 전쟁을 독려한다.

“엉덩이에 땀띠 납니다. 다 일어섯.”

부장도 등에서 땀이 나는 듯하다. 용문신이 달라붙은 셔츠에 비친다. 부장과 눈이 마주친다. 눈빛이 선뜩하다. 부장이 내 옆에 서서 전화를 엿듣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또다시 숨이 턱 막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보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부장친구가 담배 피는 손시늉을 한다. 쉬는 시간이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간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의 내가 보인다.      


오후 4시 퇴근이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굶은 엄마 저녁을 챙겨야한다. 발걸음이 바빠진다. 엄마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집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멈춰 선다.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엄마에게 지친 모습을 보이긴 싫다. 나는 눈두덩을 문지르고 머리칼을 가다듬는다. 집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엄마가 오늘도 요강에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선풍기를 제일 세게 튼다. 옷을 벗기고 젖은 수건으로 가랑이를 닦는다. 엄마는 돌이 갈리는 소리를 낼뿐 아무 말이 없다. 타월을 깐 욕조에 엄마를 내려놓는다. 늘어지고 쪼그라든 가슴, 갈라지고 터진 뱃가죽, 저절로 인상이 구겨진다. 문득 숯검정처럼 시커먼 그곳으로 시선이 간다. 살겠다고 저기서 빠져나와 울부짖으며 젖꼭지를 찾아 헤맸었나 싶다. 기억에 없는 일이다. 튜브를 목 뒤에 받혀준다. 비누거품을 낸 목욕타월로 씻긴다.

“히히.”

뭐가 좋은지 엄마가 웃는다. 기꺼이 간호하며 함께 살고 싶지만 울컥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다. 수저도 들지 못하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진다. 나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잡아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엄마가 곶감처럼 메마른 젖을 말아 올린다. 젖을 먹으라는 듯 기를 쓴다. 엄마는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 젖을 먹은 기억이 없다.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엄마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

“히히.”

더이상 웃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 없다. 나는 타월로 물기를 닦고 안아든다. 서둘러 죽을 먹이고 도로로 나가고 싶다. 성인용 기저귀를 채우고 헐렁한 옷을 입힌다.

“히히.”

또 웃는다. 웃는 소리에 짜증이 모든 땀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다. 엄마가 뱉어낸 공기를 내가 들이마셔야 한다는 현실이 참기 힘들다. 피곤에 찌든 몸뚱어리가 더욱 무거워진다.

‘죽을 거면 제발 빨리 죽어!’

차마 해서는 안 될 말이 앞니에 부딪친다. 아침에 만들어 둔 죽을 데워 저녁상을 차린다. 엄마는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면서 아침, 저녁밥을 꼭 챙겨먹었다. 가끔 시간이 늦어지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자신의 인생만으로도 모자라 내 꿈까지 망쳐놓고 밥을 내놓으라고 떼쓰는 모습에 질렸다. 철 지난 삼류 신파였다. 돈만이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엄마였다. 엄마를 이렇게 만든 목사의 이름과 얼굴이 또렷이 기억난다. 엄마는 모든 재산을 그 목사에게 투자했다. 심지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다. 약속한 6개월이 지나고, 또 6개월이 지났지만 목사는 엄마 돈을 갚지 않았다. 참다못한 엄마가 목사 집을 찾아갔다. 목사는 엄마를 외면했다.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그 후 목사는 교회에서 자신을 모욕했다며 엄마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 일로 엄마는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과 치매가 동시에 왔다. 대통령은 치매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나를 몰랐고, 나는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엄마가 입을 벌린다. 먹이를 달라 수면에 주둥이를 대고 뻐끔거리는 어항 속 물고기 같다. 혼자 있으면 곧잘 먹지만 내가 있으면 손을 놀리지 않는다. 입속에 수저를 밀어 넣는다. 넘기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턱밑에 손수건을 댄다. 또 몸부림친다. 얼굴에 밥알 몇 개가 붙는다. 오그라든 손으로 밥알을 집는다. 손등으로 내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는다. 살갗이 닿자 나도 모르게 손을 친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상을 구석으로 치운다. 엄마를 눕히고 문 앞에 선다. 엄마는 뒤집힌 게처럼 버둥거린다. 나는 방문을 닫는다. 반쯤 보이는 창문에 시선이 걸린다. 외등의 여린 불빛에 언뜻 비치는 둥그런 형체가 있다. 그것을 찬찬히 훑어본다. 호박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화단에 열매가 맺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가 방문을 긁어댄다. 나는 귀를 막고 밖으로 나간다. 죽도록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도리가 있다면, 나는 그 도리를 할 수 있는 만큼, 할 만큼 하고 있다.      


밤 12시 10분전이다. 로댕의 키스를 보며 마지막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늘 만취했고, 혼자 떠드는 수다도 여전했다. 세종대왕이면 충분한데 신사임당을 주고 내리기도 했다. 퇴근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사지도 않았는데 당첨되는 로또가 없어질 것 같았다. 그녀가 일을 그만둘까봐 걱정됐다.      


연갈색 변이 묻은 기저귀를 빼낸다. 물 티슈로 엉덩이 사이를 닦는다. 불쾌한 냄새 때문인지 한 달 넘도록 해오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늘은 소고기죽을 만든다. 믹서로 간 소고기와 빻아놓은 쌀을 넣고 볶는다. 물을 붓고 된장을 약간 넣는다. 보글보글 흰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면 약한 불로 졸인다. 이제 걸쭉해 질 때까지 저으면 완성이다. 죽을 떠먹인다. 흘리는 게 더 많다. 엄마는 혀를 요리조리 굴려가며 입가에 묻은 죽을 핥는다. 일을 나가야 하는데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붙잡힌 팔을 떼어내면 다시 붙잡고 늘어진다.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끌려나오다 문턱에 부딪친다. 시간이 계속 지체된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다며 저녁 8시까지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차에 태운다. 안전벨트를 채우자 얌전해진다. 창을 긁어대며 히히 웃는다. 웃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갑자기 차창을 머리로 세게 두드린다. 나는 창을 열어준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미간과 콧잔등에 주름이 그어진다. 엄마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는다. 찡그리지 않은 얼굴이 낯설다. 모처럼 표정이 밝아 보인다.      


케이크를 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속도를 줄여 그녀 앞에 정차한다. 그녀가 폴짝 뛰어오르며 손을 흔든다. 화장을 하지 않은 듯 앳된 모습이다. 취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다. 그녀가 뒷자리에 탄다. 그녀가 입모양으로 묻는다.

“누구?”

“엄마.”

나는 무심결에 튀어나간 엄마라는 말에 굳어버린다. 그녀는 신기한 듯 물끄러미 엄마를 내려다본다. 엄마는 히히 못나게 웃으며 그녀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녀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는 싫지 않은 듯 엄마 손에 뺨을 비빈다.

“우와, 효자네.”

돌연 부정맥이 온다.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녀는 케이크를 들어 보이며 콧소리를 낸다.

“오늘 내 생일이당. 촛불, 오케이?”

나는 한강공원으로 운전한다. 그녀는 엄마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강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깐다. 그녀는 케이크에 초를 꼽고 불을 붙인다. 초는 열 살짜리 세 개다. 그녀는 노래 부르며 박수를 친다. 엄마가 히히 웃는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손등으로 박수를 친다. 그녀는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소원을 빌고 입김을 불어 촛불을 끈다.

“넌 소원이 뭐야?”

“파리에 가서 로댕의 키스 보는 거.”

“애게게 겨우 그게 소원이야. 나랑 같이 갈래. 파리 가서 로댕도 보고, 찐한 키스도 할까. 좋아?”

그녀는 얄궂은 말장난을 하고 있다.

“엄마 죽으면 갈 거야.”

“엄마 죽으면? 너 꼭 엄마가 죽길 바라는 거 같다.”

“맞아.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너 못됐다. 그런 말이 어딨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히히, 웃고 있는 엄마를 노려본다.

“에휴, 너도 나처럼 사는 게 벅차구나. 나도 아빠가……, 야! 그래도 엄만 엄마야.”     


그녀는 파리여행을 가자고 했다. 잘 아는 요양전문병원이 있으니 엄마를 입원시키고 떠나자고 했다. 나보다 동그라미 하나는 더 버니, 자신이 모든 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처녀여행이자 마지막 이별여행일지 모른다고 했다. 더는 내 차를 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녀는 깔깔거리다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소원을 이루면 그뿐이었다. 로댕의 키스를 보고 나면 다른 꿈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 꿈은 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까. 설레고, 두렵고,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병원에 가는 길이다. 차를 타려는데 느닷없이 엄마가 손을 쭉 뻗는다. 손끝이 호박을 가리키고 있다. 엄마가 호박을 향해 고개를 젖힌다. 뻗대는 힘이 여간 아니다. 그만 힘들게 했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를 힘으로 제압해 차에 태운다.


그녀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녀를 보자 엄마는 팔을 휘저으며 알은체를 한다. 그녀가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준다. 엄마를 자기 엄마처럼 상냥하게 대하는 그녀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그녀 가슴을 파고든다. 엄마는 그녀에게 파묻혀 칭얼거린다. 맛있는 밥을 해주지 않는다고 내 흉을 보는 모양이다. 그녀는 이미 입원비를 계산했다고 했다. 모든 병실이 1인실인 꽤 고급스런 요양전문병원이었다.      


조용한 집이 낯설어 티브이를 켠다. 목사가 구속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엄마가 알면 좋아할지 슬퍼할지 모르겠다. 채널을 돌린다. 소가 새끼에게 젖을 먹인 후 새끼의 입가를 핥는다. 소는 풀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납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는 풀을 먹고 살까요? 진행자는 어미소가 새끼의 입가를 핥아주면서 풀을 소화시킬 수 있는 효소를 넘겨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비로운 생명의 현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대리석에 조각된 육감적인 남녀를 보고 있다. 여자 팔은 남자 목에 내려앉아 있고, 남자 팔은 여자 둔부에 내려앉아 있다. 남자는 힘이 넘치고 봉긋한 젖가슴은 생명력이 넘친다. 천재 조각가 로댕이 창조한 키스는 대화다. 키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숨결에 담아 전달한다. 서로 다른 숨이 키스하는 동안 하나의 숨으로 모아진다. 키스하며 서로를 음미하고 보듬는다. 때로는 체액을 주고받으며 호흡을 공유한다. 눈을 감고 서로 다른 입술을 하나로 만든다. 키스는 둘이 하나가 되는 길이다. 알 듯 모르겠는 남녀의 표정엔 의심 없는 교감이 있다. 맞닿은 입술에 가장 순결한 욕망이 넘친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로댕의 키스를 본다. 첫키스가 생각난다. 나는 한 시간 넘도록 첫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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