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 동반퇴사 후 세계여행 Ep1
우선 우리는 30대 초반 부부이다.
아직은 극초반이라는 단어를 써서 어린 티를 더 내보고 싶은.
꽤 오래 친구였던 우리는 함께 아는 지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만큼,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게 정말 떨리고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의 긴장이 무색하리만큼 돌아오는 반응은 일관되었었다.
‘너네 그럴 줄 알았다’ 혹은 ‘비슷한 애들끼리 잘 만났네’ 정도?
아마 사람들이 우리를 비슷하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각자 시간만 나면 여행을 다니고 밖으로 나돈다는 점이 꽤나 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서는 둘의 시너지가 더해져 더욱 열심히 놀았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주말마다 국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코로나가 잠잠해지자마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일반적인 직장인 부부가 살아가듯 평일에 힘들어하고 주말과 다음 휴가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어느 봄날, 6년간 몸 담았던 첫 직장을 퇴사했다.
회사욕을 엄청 하면서 살아갔지만 사실 회사가 싫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10자 내외로 간단하게 소개하면 적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월급으로 부모님이나 친구들, 동생들을 만나면 맛있는 밥과 선물을 대접하며 함께 행복해 할 수 있었다.
또 최악이라며, 이 일을 내가 다신 하나 보라는 말을 동료들과 밥먹듯이 했지만, 전국 1,000여 개의 매장과 해외로 내가 기획한 제품이 깔리는 모습을 볼 땐 꽤나 즐겁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강한 업무 강도 속에서 서로 예민해지는 동료들과 서로의 책임을 따지고 묻는 환경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나도 숨 막혔다. 돈 받고 일하려고 만난 사람들끼리 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이해 안 가하면서도, 어느 순간 같은 모습을 띄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몇년 안 되는 직장인 생활 동안 드라마로 배운 회사생활과는 다르게, 나는 본능적으로 ‘피해 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는다.’ … 뭐 이런 류의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있었다.
전형적으로 생각은 많고 실행은 못하는 겁쟁이
그게 바로 나다
퇴사하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약 2년간 되뇌던 때즈음에는 회사를 그만둔다면 하고 싶은 일들이 250가지 정도는 생겨났다. 베이킹 학원을 다녀서 작은 답례품 사업도 하고싶고,기깔나는 유럽풍 케이크를 판매하는 카페나 엄마들이 아이들 등교 후 모여드는 브런치카페도 운영하고 싶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퇴사하고 재충전하고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용기를 주었다.
대학생 때부터 꿈만 꿔오던 유럽여행도 다녀오고 싶은 만큼 다녀와서 생각도 정리하고, 받고 싶은 영감이 있으면 공부해 보고 오라고 말해줬다. 나 혼자였다면 이런저런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못했을 결정인데 달력을 가지고 앉아 퇴사일정을 픽스하자는 남편 덕분에 날짜를 정하고, 회사에 통지하고, 자연인(?)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첫 회사를 나오고, 정말 행복만 한 두 달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에서의 일상을 한 달쯤 보내니까, 이제 생산적인 일을 좀 하고 싶다. 한국이든 해외든 관계 없이 일이나 사업으로 한 군데에서 잘 정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회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중장기 플랜을 머리에서 그려나가던 때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우리 세계여행 가자. 내가 얼마나 꿈꿔왔는지 알잖아. 지금인 것 같아. “
(...? 나는 이제 완전 충전됐고, 지금은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전혀 아닌데..? 그리고 너까지 그만두면 우린 뭐 먹고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