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여행 (끝)
9박 10일 동안, Perth에서 출발해서 1번 도로를 따라 쭉 달려서 Shark Bay의 Monkey Mia를 찍고 내려왔다. 원래는 그것보다 더 북쪽에 있는 Coral Bay까지 가는 것을 계획했었는데, 피곤함과 타협하고 우리 모두가 좋아했던 동네(Kalbarri)에서 하루 더 노닥거렸다.
허트라군 -
퍼스에서 칼바리를 가기 위해 달리다보면 저 멀리에 뭔가 뜬금없이 핑크색이 보이고, '멈춰야 하는 포인트를 못 찾아서 저 경치를 놓치는거 아니야?'라는 걱정을 한 게 무색할만큼 핑크빛의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경치인데, 바람이 강해서 핸드폰이 날아갈까를 걱정하는 표정을 가진 산발한 여자가 더 많이 남았다.
칼바리 국립공원 -
우리는 칼바리 국립공원 투어를 신청해서 가이드와 함께 다녀왔다. (+ 도착해서 인포센터에 가서 했다.) 사실 우리나라 산들이 워낙에 멋있다보니, 감탄사가 나오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가는 길에 캥거루와 도마뱀도 보고, 가이드 아저씨가 해주는 서호주의 자연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도 파리가 많기는 했어서, 가이드 아저씨는 그 양봉업자들이 쓰는 것 같은 모자를 (혼자만 살겠다고!) 쓰고 다녔다.
빌라봉 로드하우스 -
여기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좋았다. 칼바리를 떠나 하멜린풀로 가는 길은 거리가 좀 있어서 중간에 휴게소 같은 빌라봉 로드하우스가 있으니 쉬었다가면 좋다-는 후기를 블로그에서 읽긴 했었다. 정말로 끝도 없이 펼쳐진 허허벌판 속의 도로를 달리다보니 저멀리에 신기루처럼 빌라봉 로드하우스가 나타났다. 주유도 하고, 먹고, 이것저것 살 수도 있는데 인테리어도 독특했다. 뭔가 미국 범죄 드라마의 배경 같은데 평화로운 느낌이랄까.
하멜린풀 -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산소를 내뿜는다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는 하멜린풀. 저 돌들 주변을 유심히 보면 기포가 올라오는데, 밤에 더 잘 보인다고 한다. 이 동네는 옛날옛적에 조개로 집을 지었다고 해서 근처에 그 유적도 남아있는데, 그 덕분인지 파리가 엄청 많았다. 아, 파리가 너무 귓가에 앵앵대니까 짜증나는데- 눈으로 보는 경치는 멋있으니까 감탄은 해야겠고- 파리 쫓느라 손은 정신없는데- 사진은 찍어야겠고-해서 잠시 이중인격자가 될 수 있었다.
쉘 비치 -
하멜린풀을 떠나, 던햄으로 가는 길에 있다. 바다의 끝이라서 조개껍질들이 쌓여 해변이 되었고, 바닷물은 짜서 물에 잘 뜬다고 한다. 조개껍질이 만든 하얀 백사장과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가 예뻤다만 맨발로 다니면 뜨겁고따갑다. 수영할 준비를 안했었는데 귀찮은 마음에 안 한게 못내 아쉽다.
몽키미아 -
던햄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날 갔던 몽키미아. 던햄보다는 몽키미아가 목적지였지만, 이동시간을 조금 아끼고 싶기도 했고 아무래도 관광지 다운 몽키미아보다는 휴양지 느낌의 던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던햄에서 잤다.
몽키미아는 돌고래가 밥 때가 되면 바다가 무릎 높이인 해변까지 와서 어부들이 주는 (+ 지금은 관광지 관리요원들이 주는) 물고기를 먹는다. 그래서 우리도 가까이에서 돌고래도 보고, 밥도 줄 수 있었는데 투어 시간이 정해져있었다. 몽키미아의 돌고래와 자연은 꽤 잘 관리를 받고 있어서, 며칠 자연 속에서 놀았더니 이렇게 사람 손을 탄 관광지 다운 관광지가 새삼 신기한 기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몽키미아를 찍고, 우리는 다시 퍼스로 향했다.
리틀라군 -
몽키미아에서 던햄으로 가기 위해 차를 운전해 달리다보니 놀아야 할 것 같은 큰 호수가 펼쳐졌다. 사실 좋은 경치를 엄청 많이 보고 다녔기 때문에 우와!하게 되는 포인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세워봐- 발이라도 담그고 가보게-라는 말이 나오는 그런 곳이기는 했다. 얕은 높이의 호수가 넓게 펼쳐져있어서 저 멀리 개미만큼 보일 정도까지도 찰방찰방 대면서 걸어갈 수 있었고, 수영을 못해도 물 속에 누워있을 수 있었다. (+ 수영 못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큰 만족감이랄까.) 여기서는 패러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미리 알았으면 아마 했을지도.
그리고 우리는 쭉쭉 내려오면서 -
Eagle Bluff Lookout에 들러서 산책로를 걷고 (+ 제주도의 큰 버전이네-라고 생각한건 비밀), 칼바리에 다시 들러서 해변가에서 스테이크를 구워먹고 (+ 사랑해요 칼바리!), Jurien Bay에서 바다 이제 지겹네-라고 생각하면서 바다 사진을 백만장쯤 찍었다.
피나클스 -
여행 다니는 내내 엄청 쨍쨍했는데, 피나클스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비가 왔다. 여기는 해가 쨍쨍했다면 그림자 때문에 더 멋있어보였을 것 같은데 흐린 날에는 신기하기는 했지만 풍경은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피나클스는 자동차를 끌고 돌아보게 되어있었는데, 도로가 깔려있는 것은 아니고 돌들로 차도를 표시해놓고 있어서 운전이 서툴면 조금 신경쓰일 수도 있겠다는 괜한 걱정도 했었다.
그리고 그 동네맛집이라는 랍스터집인 lobster shack에서 배를 채우고 (+ 중국 관광버스가 오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다시 퍼스에 도착했다.
퍼스 -
그래도 도시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만 움직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그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깔끔한 음식점을 찾아 밥을 먹고, 서점에 들러 아기자기한 문구류를 사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Perth에서 북으로 가는 경로를 골랐는데, Perth에 사는 대학동창을 만났을 때 그 남편분은 “액티브한 여행을 하고 싶으면 perth의 북쪽으로 올라가고, 힐링하고 싶으면 perth의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나중에는 그럼 남쪽으로도 한 번 :) 서호주는 안전하게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인건 분명한 것 같다. 선크림만 잘 챙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