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저자톨스토이출판민음사발매2023.12.08.
톨스토이의 짤막한 단편만 읽어 봤다. 그마저도 어릴 때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현대와 닮았다. 1800년대의 작품에서 시대의 이질감을 찾을 수 없었다.
이반 일리치는 아버지의 연줄로 괜찮은 자리를 보장받고, 그 자리에서 하는 일탈은 젊은이의 객기로 수용된다.사교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한다.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는 아니다. 그가 어울리는 중산층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미덕으로 여겨지고, 그녀에게 특별한 흠이 없고, 자신과 비슷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가 결혼한 이유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상상했던 결혼과 흡사했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아내의 요구가 부당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나도 두 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다.
아이가 없던 신혼에 다툴 일도 없고, 마냥 좋았다.
임신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려움증에 길었던 머리도 짧게 잘랐다.
살이 부쩍 쪘다. 그나마 임신 기간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 맞닥뜨린 육아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이반 일리치와 결혼한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는 예쁘게 차려입고, 파티에 참석했던 아가씨였다.
임신과 출산, 육아는 그녀에게도 알 수 없는 세계였다.
무력감과 무능함을 느끼는 이때, 남편이 함께해 줘야 결혼 생활이 흘러갈 수 있다.
서로 도와야 살 수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이반 일리치는 일로 도망친다.
이것은 표도로브나에 대한 완곡한 배신이었다.
일을 한다며 늦게 집에 들어오고, 집에 와도 일을 해야 한다며 서류 앞에 앉는다.
그는 도망갔고, 그녀는 절망했다.
직업적으로 승승장구하던 이반 일리치에게 알 수 없는 통증이 찾아온다.
의사들은 저마다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이반 일리치에게 중요한 것은 이 증상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얼마나 위급한 상황 인지다.
하지만 의사들은 하나같이 원인이 무엇인지에 몰두하며 병명에 그의 증상을 짜 맞출 뿐이다.
그는 아프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각자의 생활을 하고, 아내는 여전히 손님들을 초대한다.
그는 자신이 죽어간다고 느끼는데, 동시에 아무도 그가 죽어가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도, 가족도.
하지만 돌아보면 그가 건강할 때조차 누군가와 진심으로 맺은 관계가 있었나?
모든 것이 좋다고 여기던 그때에.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을 위한 파티를 열고, 가난한 사람은 쫓아내던 그때에.
항상 그렇듯이 아무리 살기 좋은 집이어도
딱 방 한 칸이 부족하기 마련이고,
또 수입이 늘어나도 딱 얼마가,
그러니까 500루블 정도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39쪽
그가 원하는 자리에 올라 있어 보이는 물건들로 집을 채우던 그때에도,
만족은 잠시고, 아쉬움이 한편에 자리한다.
그의 거실이 다른 모든 거실과 비슷하듯이,
자신의 일상이 그런 사람들(사회적 신분이 높은 신사숙녀)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1쪽
닮고 싶다.
동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초대받아서 거실이 관찰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SNS로 서로의 거실을 바라본다.
SNS의 인플루언서들의 공구 제품이 있기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 물건을 '사용하고 있다'고 광고하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들의 거실에, 주방에, 화장실에 있는 것들을
갖고 싶어 한다.
그들과 비슷해지고 싶어 한다.
이반 일리치의 거실에 그럴듯해 보이는 광이 나는 물건들이 채워지듯이.
업무상의 기쁨은 자존심의 기쁨이었고,
사회생활의 기쁨은 허영심의 기쁨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42쪽
그랬다. 일할 때 '일하고 있는 나'라는 어떤 이미지에 만족감을 느꼈다.
사람들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당신들과 어울릴 만큼 나는 사교적이고 명랑해.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금세 바닥날 만족감을 느끼곤 했다.
톨스토이가 묘사하는 사람의 마음은 노골적일 만큼 솔직하다. 하지만 표현은 부드럽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그의 죽음의 소식이 전해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이 죽을 것을 이미 알려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데,
이런 구성 방법에 놀랐다. 영화 화면이 눈앞에서 재생되었다.
이제 반 정도 읽었는데, 뒷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타이머를 40분으로 맞추고 소리 내어 읽고 있다.
소리 내서 읽으면 더 몰입하게 된다.
~64쪽까지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