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제대로 못 떴는데... 벌써 이유식이햐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로아의 하루

by 심야초
인생 반년 차, 이유식에 눈을 뜨다

때는 로아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신생아 시절. 산후조리원 모자동실 시간이었나... 벌써 어렴풋해진 기억이라니.


사람이라는 것은 참 희한한 것이 "이 소중한 순간만큼은 꼭 잊지 말아야지!"하고 굳세게 다짐하여도, 기억은 늘 무뎌진다.


로아는 그때부터 무척 잘 웃는 아이였다. 떨리는 입꼬리를 사알짝 올리며, 배냇짓으로 나의 마음을 뭉근하게 만들었다. 영상으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 미소와 연결된 시냅스가 점차 끊겼을 것이지만 다행히 아이폰17이 출시되는 첨단 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사진과 영상으로 아이의 미소와 연결된 시냅스 다리를 계속해서 보수공사해주고 있다.


그로부터 약 반년의 시간이 흐른 후, 미디어와 함께 기억의 다리가 무뎌지지 않도록 해주는 그 뭉근한 불기운도 여전히 내 옆에 건재했다. 꺄르르 웃는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나를, 그리고 부모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고 만다.


창문 틈의 찬 공기가 젖병의 따뜻함을 더 또렷하게 만들기 시작했던 초겨울.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기운과 함께 인생 반년 차, 봄의 아이 로아도 생애 첫겨울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분유로만 채우던 그녀의 날들에 작은 변주가 흘러들어왔다. 분유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감촉, 낯선 냄새, 입술에 닿았다가 살짝 물러나는 망설임,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첫 삼킴. 그 겨울에는 아직 낯선 숟가락을 힐끔 한 번 바라보고 또 한 번 내 얼굴을 바라본 로아의 얼굴이 있었다.


비록 미음의 반은 다 흘려보냈지만, 실패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귀엽고, 성공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았던 그 한 입, 그걸로 충분했다.

왜 아이는 혼자서 먹지도 못하는데 뺏으려고 할까?

그날의 기록은 딱 한 줄,


처음의 맛을 배웠다.



엄마 밥은 밀려도 아이 밥은 지킨다

준비가 반이라길래, 나는 준비를 두 배로 했다. 퍼기 큐브 세트를 종류별로 사고, 소분 용기는 무지개처럼 줄 세우고, 미세 눈금 냄비와 작은 스패튤라, 톤다운된 턱받이까지 들였다. 하지만 그 완벽한 세트가 향한 곳은 만년 부엌 상부장행이었다.


문제는 늘 시간이었다. 아이 목욕은 남편에게 맡기더라도 아이를 재우고 일을 마치고 나면 늘 밤 아니면 새벽이었다. 뜸을 들여야 쌀도 잘 불어나는 것처럼, 체력도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내 체력은 늘 덜 불었다.


'아, 오늘 밥 안 먹었네?'라는 생각을 꽤, 그리고 자주 할 정도로 나는 '의식주'를 잊어버린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이밥은 제시간마다 꼬박 챙겼다. 가끔은 특식으로 퓨레도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정성에 비례하지 않는 법. 허무하게도 정성의 결과는 먹뱉. 로아는 한 숟가락은 삼키고 두 숟가락은 구경만 했다. 그릇은 가벼워지지 않았고, 애타는 내 마음만 먼저 비워졌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만드는 엄마에서 고르는 엄마로. 시판 이유식으로 기본기를 깔고, 가끔 퓨레와 치즈감자볼로 이벤트를 건다! 아주... 가끔.


그래도 작은 변명은 챙겼다. 이것저것 알아본 후에 가격대는 좀 있지만 뭔가 좋아 보이는 유리병 이유식으로 골랐다. 완벽 대신 지속, 손맛 대신 여력. 나머지는 로아의 웃음이 채워 주었다. 그 와중에도 고마운 것은 분유에 이어 이유식도 너무나도 잘 먹었다는 것. 로아는 먹뱉했던 엄마 이유식보다 시판 이유식을 너무나도 잘 먹었다. 살짝 마상이지만 오히려(?) 고마운 마음.


유리병 한 병이 비면 안심도 조금 채워지고, 내일을 버틸 체력도 조금 남았다. 내 체력은 세이브했지만 등가교환의 법칙 때문인지 우리 집 분리수거함에는 어느덧 로아가 싹싹 비운 유리병이 한가득 쌓여갔기에, 남편이 아주아주 쬐끔 더 수고롭긴 했다. 잘 먹는 로아는 그렇게 무럭무럭 오통통하게 잘 자라주었다.


계속 찾아오는 처음, 처음, 또 처음

아이의 성장은 한 마디로 반복, 또 반복이다. 한 번의 뒤집기를 위한 수많은 연습, 앉기, 서기, 걷기 위한 반복적인 시도들...


그리고 이미 기억도 할 수 없는, 아득히 먼 옛날 반복의 시기를 한참 지난 부모도 그 반복에 동참한다. 그래서 육아는 힘들고 어렵다.


아이야,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라지만

매일 같이 아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는 것을 반복하는 것. 말이 터지는 두 돌 즈음에는 동물원에 간 추피, 변기통이 생긴 추피.... 추피 그리고 또 추피... 이미 아는 대사와 장면이 담긴 책을 수십 번, 수 백번 읽어줘야 하는 건 고문이 따로 없다. 게다가 강제 디지털 디톡스를 겸해서!


아무튼 간 이 시기의 로아의 반복은 서는 연습이었다. 베이비룸에 손바닥을 붙이고 로아가 선다. 발바닥은 바닥의 결을 더듬고, 무릎은 잠깐의 용기를 낸다. 장비는 단출하다. 손으로 짚고 설 난간 하나, 칭찬과 박수 담당 둘. 서기 절차는 정교하다. 손바닥 점검, 시선 교환, 기립 선언. 선언 직후엔 꼭 내 얼굴을 확인한다. 같이 보고 있지라는 눈빛 계약. 서면 박수, 앉으면 포옹. 둘 다 성공 처리. 숫자 대신 표정으로 성장률을 기록한다. 내일의 계획도 간단하다. 1초만 더, 한 번만 더. 작은 용기가 큰 변화를 만드는 법을 아이에게서 배운다.

사회생활의 시작

6개월이 육아에 변곡점인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문화센터에 갈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된다. 이 말인 즉슨, 다른 또래와 교류를 한다는 것. 뭐, 사실상 아이들의 교류라기보단 엄마들또래와... 교류이긴 하다. 그래도 매일 같은 풍경이 반복되다가 새로운 장면들이 펼쳐지니 얼마나 재미가 지겠는가.


문화센터의 목표는 교육이 아니라 귀여운 옷을 입히고 아이 사진 찍기, 다른 귀염둥이들 구경하기, 아이 데리고 외출하기, 짐시나마 바람 쐬기 등등이 더 컸다. 참여가 목표인 날도 있지만 관람이 더 큰 배움인 날도 있다. 강사님의 “한 번 더 흔들어 볼까요”에 나는 로아의 손 대신 내 어깨를 크게 흔들었다. 아이는 눈으로만 따라오다 이따금 공을 잡아들고 아주 작고 하찮은 힘으로 던졌다. 그 정도면 오늘 수업은 절반 이상 끝.


오늘의 출석부에는 동그라미 하나와 짧은 한 줄. 함께 있으면 부모도 충분히 배운다. 아이와 함께 나도 성장해 갔다.

거리의 코치들

초겨울 공기는 얇게 스민다. 창밖 나뭇잎은 살짝 흔들리고, 집 안에서는 숟가락이 하루에 한 칸씩 진도를 뗀다. 그리고 아이와 맞는 첫겨울이 되니 처음 듣는 말도 생겼다. "어머, 아이 춥겠네"

...이분들에게도 북유럽 유모차 야외 취침 영상을 보여줘야하나...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말을 붙이는 사람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이제 로아도 외출할 만한 짬이 차고 밖에도 자주 나가게 되었으니, 그런 경우는 자주 찾아왔지만 자주 겪는 만큼 불편했던 말들은 곧 익숙해지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은 귀엽다, 보기 좋다는 애정 어린 시선이 반이며, 그 반대의 시선반이었다.


거리에서 만난 코치들의 말들은 가끔 두꺼웠다. 두꺼운 말들 사이에서 내가 고른 건 어색한 웃음과 얇은 호흡이었다. 그러게요 하하하.... 한 문장으로 방어막을 세운다.


두꺼운 말을 쌓아두지 않으면 초겨울의 두께는 가벼워진다. 무겁지 않게 들고 내일로 건너가기 딱 좋은 무게. 내일의 목표도 변함없다. 한 숟가락만 더, 한 번만 더. 남 신경쓰지 말고 우리의 추억을 쌓자! 우리의 템포대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유리병의 ‘똑’ 소리는 여전히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고, 빈 병 하나가 쌓일 때마다 안심도 한 겹 더해진다. 통통해지는 볼살을 볼 때면, 오늘의 계산이 맞았다고 스스로 결산한다.


로아와 함께한 첫 겨울, 공기는 얇고 사람들의 말은 두꺼웠다. 그 사이에서 앉는 데 성공한 아이는 서는 법을 서서히 배우고, 나는 웃는 법을 배웠다.


숟가락은 절반만, 산책은 조금 더. 오늘은 이렇게 끝났다! 하고 흔쾌히 하루를 접었다.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내일과 내일이 다가오면 로아는, 그리고 나와 남편은 계속 성장해갈 것이다.

아 파이팅! 우리 부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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