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있죠.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동원돼야 한다는 말
배려를 바란 적은 없지만
3월부터 어린이집에 갈 예정이었던 로아. 하지만 첫 두 칸, 1월과 2월이 문제였다. 내가 일하던 곳은 정말 애증의 프로그램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책을 소개하고, 주제에 맞춰 사람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일하는 건 즐거웠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정도의 업무량에 맞는, 제대로 된 급여를 받고 아이를 키우지 않는 입장이었다면.
일은 처음 말한 것과 달리 훨씬 많았다. 아니 많아졌다. 처음엔 분명 적은 급여를 주는 만큼, 한 달에 두 번의 출근이라는 메리트와 그만큼의 업무량이긴 했다. 그래서 수긍한 터였는데, 어느 순간 그 이상의 일이 주어졌다.
어렵지 않았던 VCR은 기존의 두 배 분량이 되었고, 단순히 책 소개에 그쳤던 전과 달리 구성이 필요해졌다. 물론 퀄리티는 훨씬 나아졌지만... 내 워라밸은요...?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벌었던 급여의 반 정도는 적은 급여를 받고, 평일에는 섭외와 촬영 그리고 대본. 주말에는 자막 작업을 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모든 시간을 일에 할애해야 했다. 물론 육아한다고 특별대우를 바란 적은 없지만, 내가 오기 전보다 일이 더 쌓이는 광경은 마음을 슬쩍 긁었다.
한 마디로 정말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맥북 에어로 프리미어 프로와 포토샵을 동시에 돌리는 느낌이랄까. 역량은 안 되는데 하긴 해야 하니, 맨날 뻑이 날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는 껐다 켜면 그만이지만 이건 내 맘대로 끌 수도 없는, 한 마디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비밀번호 486
육아를 위해 돈은 덜 받기로 했는데 왜 시간까지 덜 받는 느낌일까, 하루 스케줄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라는 자막이 자동으로 깔렸다. 육아를 위해 돈을 포기했는데, 이런 스케줄이라면 나는 왜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비밀번호를 만들었다. 하루에 네 번 한숨을 쉬고 여덟 번 울컥하고 여섯 번 퇴사를 (속으로) 외치는 루틴. 문득 “왜 여기서 계속 일을 해야 하지?”라는 안건이 올라오면, 통장과 캘린더를 양손에 쥐고 셀프 중재에 들어갔다. 현실은 매번 판정승.
그래도 3월 어린이집 입소라는 체크포인트가 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자는 심경이었다. 업무는 여전히 증식 중이지만, 그때까지만 버티자는 합의서를 나 자신과 다시 썼다. 도망 대신 속도 조절로.
어린이집이 시작되면 모든 게 쉬워질 거라는 믿음은 스포 방지로 생략.
놉놉! 안됀는것은안돼는것
그렇다고 무작정 버티기를 했느냐? 아이 보면서 일하기, 이건 제목 그대로 안됀는것은안돼는것이었다.
바람은 차갑고 마감은 뜨거운 겨울, 결론은 심플했다. 하나를 포기할 수 없다면 외주를 맡기자. 완벽은 포기하고 작동을 택한다. 3월이 오기 전까지 건널 임시 다리를 지금 당장 찾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조부모 SOS를 띄우고, 거리는 가깝지 않았지만 시간제 보육을 결제했다. 맡기고 나면 카페 본진으로 이동. 2시간, 3시간, 어느 날은 6시간까지. 타이머를 돌린다. 한 잔의 커피와 하나의 마감, 이 조합이 그날의 생존 메뉴였다.
처음 며칠은 마음이 덜컥했지만, 아이는 금방 관찰모드에서 참여모드로 변했다. 잠깐의 거리 두기가 서로의 표정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는 걸 그제야 배웠다.
완벽 대신 작동. 죄책감 대신 실행. 오늘의 점수는 “보냈다, 했다, 데려왔다”로 매긴다. 단순하지만 돌아가는 방식. 이게 우리 집 패치 노트였다.
적응기간이란 게 있단 말이지
이렇게 두 달을 버티자, 어느덧 3월이 되었다. 로아가 등록한 어린이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엘리베이터만 타면 도착하는 1층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3월이 됐지만, 문제는 바로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몰랐다. 이곳에는 ‘적응 기간’이라는 새로운 매뉴얼이 있다는 걸. 첫 주는 2시간 동반 등원이었다. 에게, 두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두 시간 동안 오로지 아이를 좇는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로아는 장난감을 훑고 나는 로아의 표정을 훑었다. 두 시간은 길었고, 집에 오니 괜히 더 피곤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은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든다.
다음 주는 2시간 단독 등원이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아이를 데려가라는 전화 사이에서 심장이 먼저 출석을 불렀다. 울까. 먹을까. 잘 놀까. 내 머릿속 푸시 알림은 과열이었다. 그런데 선행 학습을 많이 한 결과일까. 돌아온 보고는 담담했다. 오늘도 잘 놀았어요.
그렇게 서서히 로아는 엄마와 떨어지는 연습을 했다.
카페 본진에서 타이머를 켜고 한 페이지씩 마음을 접었다. 성공의 기준은 단순했다. 들어갔다. 놀았다. 나왔다. 보너스도 있었다. 또래 부모들과의 잡담이 마음 체력을 채워 주었다. 여벌은 몇 벌이 적당한지. 이름표는 어디에 붙이는지. 소소한 정보와 공감이 의외로 큰 안심이 됐다. 번호도 나누고 단톡방도 팠다.
이렇게 3월의 체크인은 끝이 났다.
적응이 익숙한 아기
하도 이 손 저 손을 거친 겨울 덕분인지, 로아는 어린이집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키즈노트 앨범에는 사진이 차곡차곡 쌓였고, 알림장은 오늘의 표정을 꽤 정확히 번역해 줬다. 물론 대부분의 총평은 대개 “잘 지냈어요. "괜찮았어요”로 마감됐다. 일을 마치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로아의 얼굴을 보는 것이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걷기 연습은 바퀴 대신 모서리를 한 칸씩 점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넘어짐과 박수가 하루의 루틴이 됐다. 넘어지고 웃고 다시 일어나는 장면이 반복되는 사이, 카메라 롤은 어느새 로아의 계절을 한 바퀴 채웠다.
돌아보니 1년은 그렇게 꽉 찼다.
소란은 줄었고 사진은 늘었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온 마을을 동원해 키운 아이
돌아보니 정말 손이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과 선생님의 손, 그리고 카페의 콘센트까지 한 팀이 되어 하루를 앞으로 밀었다.
우리 집 점수표는 단순했다. 보냈다, 했다, 데려왔다, 이렇게 세 줄이면 합격이었다. 실패한 날은 보냈다에서 멈췄고 잘 된 날은 데려왔다에 느낌표 하나를 붙였다.
도움을 청하는 일은 패배가 아니라 협업이라는 걸 드디어 배웠다. 그래서 다양한 표정을 가진 로아의 사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그 옆에 (나 포함) 행복한 표정을 지닌 다양한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 온 마을을 동원해 키운 아이는 결국 온 마을을 웃게 만든다.
내일의 계획도 단순하다.
어떻게든 마을의 손을 동원해 한 칸만 더 나아가자!
https://brunch.co.kr/@initialaction/28
전체글 보기
https://brunch.co.kr/magazine/imchuly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