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겠다. 나의 분양권을 향해
도윤이 입사 첫해, 추석 즈음에 차를 샀다. 흰색 SUV는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다주었지만, 막상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몰고 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이었다. 운전과 주차에 드는 시간, 기름값, 귀찮음. 어느새 기숙사에 눌러앉아 하루를 허비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때 문득, 그는 ‘젊음에 대한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대학 시절 내내 그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아르바이트와 과외, 근로장학생 일을 하면서도 과제와 전공 공부, 대외활동, 장학금 경쟁, 취업동아리 회장까지. 스스로에게 단 하루도 쉬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첫해만큼은,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고, 늦잠을 자고, 목표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서야 도윤은 결심했다.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기숙사를 떠난 그는 경기도의 한 역세권 원룸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즐거웠다. 쇼핑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말마다 어학을 배우러 서울로 오갈 때면,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괴로웠다. 지방은 아니지만, 서울과는 미묘하게 거리가 있는 곳. 그 낯선 공간을 다니며, 이질감을 느끼고 또 익숙해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자리 잡았다.
“서울에 살고 싶다.”
이 무렵 도윤은 경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소액 주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반면 부동산은 달랐다. 누구나 살아야 하고, 그가 직접 거주지를 옮겨보니 ‘주거’ 자체가 인간의 본능적 욕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과거 데이터를 들여다보니, 물가가 오르면 부동산 가격도 함께 오른다는 흐름이 보였다.
“언젠가 내 명의로 된 집 하나는 가져야겠다.”
이 결심은 점점 뚜렷해졌다.
회사 선배들은 경기권 신도시 청약에 도전했다. 도윤도 몇 번 따라 나섰다. 몇 차례 예비당첨이 되기도 했지만, 위치나 전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했다. 언뜻 아쉬웠지만, 그는 단순히 운에 맡기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스스로 공부하며 전략을 세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이 분명해졌다.
“서울에 넣어야 한다.”
문제는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배도, 친구도, “사회 초년생이 서울 청약은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가격은 높고, 가점도 부족했으니까. 그러나 도윤은 서울 청약 조건을 샅샅이 들여다보다가 한 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주택자, 서울 1년 이상 실거주자. 가점 80%, 추첨 20%.
그는 추첨에 주목했다. 기회는 열려 있었다. 그렇다면 서울로 가는 게 맞았다.
서울 전세는 경기도 원룸보다 세 배 가까이 비쌌다. 기존 보증금 5천만 원에서 단숨에 1억 4천만 원.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또 옮기느냐”는 꾸지람도 이어졌다. 그러나 도윤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실거주 측면에서도, 투자 측면에서도 서울이 답이다. 같은 상승률이라면 서울이 더 크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분양권으로 향해 있었다. 은행이 중도금을 대주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면 서울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서울에서의 1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청약을 넣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될수록, 도윤은 확신을 굳혔다.
“지금이다.”
그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청약을 모조리 넣었다. 다섯 곳을 지원했고, 그중 한 곳에서 예비당첨 58번이 떴다. 긴장된 추첨일. 그의 이름이 불렸다.
서류를 확인하고, 도장은 또박또박 찍혔다.
그 순간, 그의 손에는 첫 분양 계약서가 쥐어져 있었다.
계약서를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
자동차 유리창밖으로 스쳐 가는 빌딩들에 비친 햇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누군가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일 뿐이라 했지만, 도윤에게는 달랐다.
그 종이는 단순히 집 한 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을 증명하는 증표였고,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좇아 얻어낸 첫 열매였다.
또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엄청난 공포와 기대가 함께 느껴졌다. 두렵기도 했지만 가능성에 대해서는 궁금하기도 했다.
도윤의 분양권 계약은 단순한 부동산 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라는 거대한 파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첫 다이빙이었고,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