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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Oct 22. 2021

육아가 힘들다는  엄마의 사설(私說)

[육아 에세이]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는 배우 최정윤 씨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거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한 말이 재조명되고 있다. "남편에게 힘들다는 말을 왜 못하느냐"는 오은영 정신건강의학박사의 물음에 최정윤 씨는 "그러면 '너만 애 키우냐'고 하니까"라고 답했던 것이다.


ⓒ픽셀즈


애는 너만 키우냐.

이 말을 들으면 '그럼 일은 너만 한다고 유세냐!'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보지만 싸늘하게 내 속에서만 터졌다 사라진다. 이 말을 밖으로 내뱉는 순간 지저분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언젠가 나 역시 그 말을 들어봤기에 남일 같지 않고 마음이 쓰인다. 그 말이 그의 이혼을 결정지은 치명적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육아가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을 쓰린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짠해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분명 '남자는 안 힘드냐'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힘든 주체가 '나'라는 것이다. 남편은 안 힘든데 나만 힘들다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들다는 말이니 굳이 곡해할 필요는 없다.



니 애 키우는데 뭐가 힘드냐.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이 말도 참 많이 듣는다. 그러게 말이다. 내 애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할 줄 알았는데 해 보니 그게 또 힘들더란 말이다. 구태여 뭐가 힘들다, 뭐가 미치겠다 할 것도 없다. 육아가 힘들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말들을 쏟아내도 공감하지 못할 테니까.


참 이상하게도 엄마가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유독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는 왜 육아가 힘들면 안 되는 걸까. 회사 일이 힘들다고 하면 '남의 돈 벌어먹기가 참 힘들다'고 공감하면서, 사는 게 힘들다고 하면 '지금만 지나가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위로하면서 왜 육아가 힘들다는 말에는 '니 애 키우는데 뭐가 힘드냐', '그럴 거면 낳지 말지 그랬냐'는 비난의 소리를 7.1채널 서라운드급으로 들어야 하냔 말이다.

 

회사 일이 힘들다는 사람에게 '그럴 거면 취직을 왜 했냐', 사는 게 힘들다는 사람에게 '그럼 왜 태어났냐'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육아가 힘들다는 엄마에게 굳이 '그럴 거면 왜 낳았냐'고까진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면 이미 그 엄마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가 비난했듯 감성팔이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진짜다!


때때로 세상이 요구하는 엄마의 '상(像)'은 참 잔인하다. 아, 또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아니고 '엄마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엄마가' 그렇다는 것이니. 남편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신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그 또한 존중한다.



ⓒ픽셀즈



모든 걸 갈아 넣어 아이를 키우는 데도 격려와 응원보다 비난과 질책이 이어져 무너질 때가 많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니 애 키우면서 뭐가 힘드냐'는 사람들에게, '그럴 거면 왜 낳았냐'는 사람들에게, '남자는 노는 줄 아냐'는 사람에게.


힘들다고 하면 그냥 들어주세요.

힘들다는 말이 뭘 해달라는 말이 아니잖아요. 남편에게 일을 그만두고 애를 보라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 눈치 보면서 칼퇴근해서 오라는 것도 아니에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나 힘들어 죽겠는데 너는 편해 보여서 좋겠다'고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들어달라는 거예요. 알아달라는 거예요. 힘들다는 말을 하고 위로받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하나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생이 많아.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 우리 같이 조금 더 힘내보자'는 정도의 격려가 이어진다면 정말 감동일 거예요.


그러니 짜증 난다는 얼굴로 눈을 치켜뜨며 '니 애 키우는 데 뭐가 힘드냐'고 하지는 말아 주세요.

가끔은 나라는 인간 자체로도 삶이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냥 힘든 거라고요.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사람, 끌어 올려주기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밀어버리지는 말아 주세요. 그냥 들어만 주면 올라오는 건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답니다.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육아가 힘들다는 엄마들도 '나도 너처럼 애 키우면 열도 낳겠다' 싶을 때 많아요. 서로의 상황이 다른 데도 '나는 안 힘든데 너는 왜 힘들다고 유난이야'라고 생각할 필요까진 없잖아요.


나는 힘들지 않지만 누군가는 힘들 수 있어요. 그건 단순히 그와 내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어떤 경우엔 나는 힘들지 않은데 다른 누군가가 힘들 수 있는 거잖아요. 등산이나 달리기처럼 누군가에겐 전혀 힘들지 않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겐 죽을 만큼 힘들 수도 있는 것처럼요.


애 키우기 힘들다는 말에 공감되지 않는다면 '그랬구나' 정도 해 주시면 돼요.

이건 아이에게도 많이 쓰는 공감의 방법이에요. 아이의 행동이 절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그랬구나~'라고 하면 어딘가 이해가 조금씩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공감받았다는 마음이 들지요.


힘들다는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비록 영혼은 없을지언정, 과거 TV 프로그램 X맨에서 '당연하지'를 외쳤던 것처럼 그냥 '그랬구나' 해주세요. 비난하고 욕하는 것보다 그게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도 훨씬 낫지 않을까요?


니가 나가서 돈 벌면 되겠네.

그리고, 간혹 '니가 나가서 돈 벌고 남편한테 애 보라고 해라. 능력도 없는 게...'라는 분들도 계세요. 정말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인 차이와 사회적인 분위기, 혹은 그 가정의 어떤 사정이 아니라, 엄마들이 남편보다 능력이 없고 돈을 못 벌어서 아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픽셀즈


살다 보면 바람에 흩날리는 마른 낙엽처럼 사정 없이 흔들릴 때가 있어요. 그 낙엽이 사계절 내내 나부끼는 것은 아니듯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기도, 떨어지기도, 다시 자라나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요.


엄마들도 그렇고요. 특히나 아이 때문에 힘든 자신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더 힘들어지는 것이 엄마예요. 스스로의 자질을 탓하면서 혼자 눈물 쏟으며 반성하는 게 엄마랍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탓하기 때문에 속이 계속 타들어가는 게 엄마예요.


그러니 힘들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힘든 마음을 혼자 쌓아두다 폭발시키지 않도록 조금씩 흘려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엄마들은 다시 큰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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