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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16. 2022

아이보다 나은 성숙한 어른이 되자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더라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말, 물리적인 어른이 되고도 한 참이 지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마음과 정신이 어른인 제대로 된 어른이 되자. 





제주행 비행기에서 한 남성이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폭언을 쏟는 사건이 발생해 공분을 사고 있다. "누가 애 낳으래?", "어른은 피해 봐도 돼?"라고 소리를 지르며 승무원의 제지도 뿌리치고 마스크까지 내리고 몸부림을 치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영유아나 어린이는 어른으로서 마땅히 보호하고 감싸줘야 할 대상이다. 이 문제는 차별이나 형평성 따위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그들이 갖는 특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가 바탕이 돼 있어야 하며, 부모가 통제를 하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악의를 갖고 행동하는 어린이는 제외한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아이들에 비해 인지력이 뛰어나고 통제력과 책임감이 있다는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어른이 아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이보다 나은 어른 [육아 에세이] ⓒ픽사베이


이런 류의 사건 외에도 '어른이 아이보다 못할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들이 있다. 최근 한 북카페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방학이라 온종일 뒹굴거리는 아이들을 재촉해 북카페를 찾곤 한다. 잔잔한 음악과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은 기분 좋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하루 종일 나를 찾고 싸우고, 귀가 쉴 틈을 주지 않는 아이들도 그곳에선 입을 다문다. 간혹 속삭이며 대화를 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그곳에선 떠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날도 북카페에 갔다. 내가 딱 좋아하는 그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를 찌르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뒤집어질 듯 웃고 떠들고 손뼉 치는 소리가 그곳이 북카페인지 유흥가의 뒷골목인지 알 수 없겠는 지경이었다. 


분명 어른의 소리였다. 소음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다 보니 네임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너덧의 무리가 눈에 들었다. 


그곳은 7세 이하 어린이의 출입을 금하는 곳이었으며, 입구에 '소음 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떡하니 서 있었다. 게다가 명백히 '북카페'라는 명칭으로 영업되고 있는 곳이었다. 설령 그 모든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반 커피숍을 생각했더라도, 공공장소에서 대화할 때 목소리를 낮추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예의다. 


문득 억울해졌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소란스럽다는 이유로 출입조차 거부당하는 곳들이 많다. 물론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것들도 있고, 부모의 무지한 행동 때문에 그런 곳들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다른 어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 겨우 10살 전후의 아이도 아는 '정숙'의 개념조차 모르는 어른 손님들을 보며 '저들이 과연 아이보다 더 나은가' 싶은 것이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떠드냐는 아이의 물음에 "뭔가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나 봐."라고 얼버무리면서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건 결국 내 몫이었다. 

아이보다 나은 어른 [육아 에세이] ⓒ픽사베이

어린아이들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끈기가 짧은 데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대책 없는 자유가 있다. 그래서 교육과 학습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인으로 성장한다. 지금 '어른'으로 불리는 우리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인지력과 이해력, 통제력 등에서 아이들에 비해 나은 사람이 됐다. 그래서 어른에게는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올바른 학습이 이뤄지도록 도와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당연히 시끄러울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누가 애 낳으래?", "어른은 피해 봐도 돼?"라는 고성과 난동 대신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야 더 당당히 개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 역시 어른으로서 내 행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아이들 앞에서 어른스럽다 할 수 있을까. 얼굴이 달아오르는 몇몇 일들이 떠오른다. 반성하고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 당당하겠다는 다짐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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