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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19. 2021

결혼 선배의 조언 나부랭이 '기선 제압'

"ㄱ소리 하지 마세요"

한 지인과 대화 중이었는데 그가 내게 물었다.


"결혼이라는 게 뭘까?"


당시 남편과 이혼소송 준비 중이던 그는 꽤나 진지해 보였다. 나는 답했다.


"언니. 결혼은 그 사람이 나랑 다른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인정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요?"


내가 최근에야 찾은 답이었다.

ⓒ픽사베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말들이 참 많다. 내가 들었던 말들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기선 제압'이었다. 결혼 초반에 기선을 잡지 못하면 평생 상대에게 잡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약 10년의 결혼생활을 하면서 깨달았다. 기선 제압은 '개소리'였다. 스스로가 아내 혹은 남편에게 잡혀 산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이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것을 조언이랍시고 얘기하는 것이다.

 

나 역시 흔하디 흔한 그 조언을 믿고 결혼 초반 기선 제압을 시도했었던 것 같다. 아쉽게도 내 남편은 누구에게도 기선을 잡힐 사람이 아니었기에 대실패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기선을 잡는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어쩌면 부부싸움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수없이 남편과 '다름'의 벽에 부딪혀 왔다. 이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던 결혼생활은 기대와 달리 자갈밭이었고,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더욱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와 나의 해결방법은 너무도 달랐다.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인 차이에 근 30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생활방식의 차이까지 더해졌으니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하는 사이에 티끌만 한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번져 산더미가 되기 일쑤였다.  


때문에 나는 수시로 '그와 나의 차이' 혹은 '그와 나의 다름'을 느끼며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픽사베이


숱한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고, 이혼 문턱까지 갔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안 좋았던 시간들도 있었다. 서로를 보는 것 자체가 싫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꼴 보기 싫은' 상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솔직히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그는 모두 변했다. 그전에는 상대가 나와 다른 것이 못마땅했다면 이젠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나는 맞고, 너는 틀려'가 아니라 '나는 이런데 너는 그렇구나'가 됐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상대를 '나의 연장선'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을 았다.


그러고 나니 이제 그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마음 상하고 다툴 일이 적다. 나는 나이고, 그는 그일 뿐이니까.


이게 가족으로서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관심'도 아니다. 단지 상대에게 기대하는 가치가 달라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다. 상대를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인격체'로 보게 된 것이니까.


대표적인 예로, 남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절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예전에는 내 생일을 남편이 꼭 기억한 후 알아서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주길 바랐다가 그러지 않아서 실망하고 속상했다면, 이제는 내가 먼저 며칠 후가 생일이라고 언급하며 받고 싶은 선물을 요청하는 것이다. 10여 년을 같이 살았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기선'의 사전적 의미는 운동 경기나 싸움 따위에서 상대편의 세력이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가 모두 성인이고 평등한 관계인데 대체 왜 기선을 잡아야 한단말인가! 결혼을 했어도 나는 나이고, 그는 그인데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다.


결혼생활은 상대의 기세를 억누르고 내가 그 위에 올라서려고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그러니 이제 결혼선배들이 '기선 제압'으로 둘의 관계를 흔드는 대신 '존중', '이해', '인정'의 마음으로 더욱 단단해지라고 조언했으면 한다. 나도 결혼을 앞둔 내 지인들에게 그렇게 얘기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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