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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10. 2021

칭찬에 배고픈 자의 '칭찬지론'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칭찬하는가. 습관처럼 평가하고 질타하는 말을 일삼지는 않는가.

칭찬은 실로 위대한 힘을 가졌다. 어떤 이들은 칭찬에 의존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나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나는 칭찬만큼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없다.




“당신이 싸준 도시락 보고 직원들이 깜짝 놀라더라?”
“어머 진짜?”
“응. 어떻게 도시락을 이렇게 싸주냐고. 내일은 어떻게 싸줄지 기대된대.”



최근 몇 주 남편의 도시락을 쌌다. 다이어트 도시락이었다.

남편과 같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100일이 다 되어 간다. 한 회사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인데, 영양 보충 쉐이크와 건강보조식품을 먹으며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차단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니 상관없지만 남편은 대체 어떻게 그 식단을 유지하려는 걸까’. 내 의문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인해 식사하는 미팅의 횟수를 많이 줄였고, 같은 팀 돌싱인 남자 직원이 자신의 점심 샐러드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남편의 것까지 챙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신 남편은 재료비와 수고비 명목으로 조금씩의 비용을 지불한다. 내 입장에서는 남편의 식단 문제에 대해 신경 쓸 일이 없으니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주말. 저녁으로 기름 없이 구운 두부를 밥 대신 사용한 김밥을 말았다. 속으로는 채 썬 파프리카와 오이, 계란 지단을 넣었다. 남편은 그 ‘두부채소김밥’의 사진을 찍어 회사 단톡방에 올렸고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어떻게 두부로 그런 걸 만들 수 있냐고 놀라움과 칭찬이 계속 ‘카톡’거렸다. 으쓱했다.
 

그날부터였다, 남편의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게. 남편은 동료 직원이 도시락을 싸오니 힘들게 싸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내 도시락은 아침이나 저녁에 먹으면 될 일이었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면 집안 정리를 해놓고 도시락을 쌌다. 하루는 계란 지단과 채소, 사과를 채 썰어 듬뿍 넣은 ‘키토김밥’을 쌌고, 하루는 소고기에 채 썬 채소를 넣어 ‘소고기 채소말이’를 쌌다. 또 하루는 다진 소고기와 으깬 두부, 다진 채소들을 섞어 배추찜을 했고, 어떤 날엔 두부구이와 계란말이를 두툼하게 해 ‘접어먹는 김밥’을 싸기도 했다. 도시락을 보며 찬사를 쏟아낼 회사 동료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피곤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일은 어떤 걸로 사람들을 놀래킬까’ 하며 새로운 메뉴를 구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두부채소김밥’ 싼 날의 그 칭찬은 3~4주가량 나를 남편의 다이어트 도시락 싸는 현모양처로 만들었다.  


.



아이가 한동안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라는 제목의 동요였는데 노랫말이 기가 막힌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세요. 그럼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짜증 나고 힘든 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꿈이 크고 고운 마음이 자라는 따뜻한 말 “넌 할 수 있어”!


당시 나는 여러 자격지심과 패배감 등으로 우울했는데 아이가 혼자 흥얼거리는 이 노래를 듣고 혼자 한참을 울었다.  


ⓒ픽사베이

나는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어떤 것이든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아이를 전담해서 키우는 부모에게 칭찬들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이는 잘 보면 ‘당연한’ 거고, 못 보면 죄인이 된다. 집안일은 또 어떤가. 열심히 해봤자 티가 나지 않는다. 이 역시 ‘당연한’일이 될 뿐이다. 그러다가 집안이 정돈되지 않은 날이 있으면 ‘집에서 대체 뭐 하는 거야!’라는 불평을 듣기 십상이다. 칭찬이 듣고 싶었다.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어’라는 메시지가 필요했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질책만 이어지는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19로 거의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 나는 칭찬과 응원에 더욱 목을 메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타인이 보기에 ‘당연한 것’들만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랬던 내 마음이 아이가 흥얼거리는 노래에 심하게 요동쳤다. 노랫말이 곧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노래는 내 힘든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것 같았고, 누군가를 대신해 “넌 할 수 있어”라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주는 것만 같았다. ‘애들이나 듣는 노래’라고 생각했던 그 동요가 한참이나 내 심금을 울렸다.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정성훈 지음/ 케이엔제이)>이라는 책에 따르면 어린아이 때의 경험은 일생으로 이어지는데 주변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적절한 기대를 받아본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자아존중감이 높고 자신의 주변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자신한다고 한다. 칭찬은 이렇게 한 사람의 일생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내가 칭찬에 목을 메고, 칭찬 받기 위해 매일 밤 도시락을 싼 것도 어쩌면 본능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칭찬은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힘을 발휘한다. 아끼는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자. 작은 호의에도 깊이 감사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자.




남편은 이제 아침저녁으로 쉐이크만 먹고 점심엔 일반 밥을 먹는다. 내가 더 이상 남편의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칭찬받을 다른 거리를 찾았다. SNS에 아이들에게 차려준 식단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그럼 지인들을 비롯해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대단하다’, ‘우리 애들도 그렇게 먹이고 싶다’, ‘식당 같다’ 등의 댓글을 달아준다. 그 댓글이 진심인지 기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나마 ‘칭찬’으로 보이는 그것들이 주는 힘으로 또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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