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이웃집의 반가운 환호성

오늘도 기다릴게오

by 이니슨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층간소음이 늘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밤늦은 시간에는 다른 집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에서 우리나라가 경기를 하는 날에는 다른 집의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히려 그 소리를 기다리게 된다. 그 날만큼은 민폐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그 재밌는 경험을 했다.

출처=연합뉴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두 아이, 특히 11살 아들인 큰 아이는 월드컵에 더 관심이 많은데 경기가 평일인 데다 시간이 늦어 보여주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늦게 자면 등교나 학원 등 다음 날 일정에 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이들이 잠들어야 나도 육아 퇴근을 하지 않는가! 얼른 재우고 가볍게 혼술이나 하면서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경기를 본다는 것은 사실상 '육아 야근'이다. 그것도 계속 수발을 들어야 하기에 경기에 집중할 수 없는 열악한 근무환경.

'매일 그런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특별한 날에만 그런 것인데 괜찮아'라고 마음먹다가도 금세 아니라고 고개를 젓게 되는, 나는 쉬고 싶은 엄마다(^^;)


대한민국의 첫 경기날. 아이들과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으로 일찍이 합의를 한 듯했으나 재개된 협상 테이블에서는 결국, 전반전까지만 보고 자는 것으로 협상이 종결됐다. 두 번째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첫 경기를 전반전까지 봤던 아이들이 두 번째 경기라고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일찌감치 퇴근을 포기하고 야근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전반전. 우리나라 선수들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도 아쉽게 두 골의 실점이 났다.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어야만 하는 시간. 아이들은 더 보길 원했지만 더 이상 잠잘 시간을 미룰 수는 없었다. 더욱이 내 퇴근을 더 미뤘다가는 과로사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출처 = 연합뉴스

보고 있던 TV를 끄고 온 집안은 소등 모드였다. 휴대전화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해 놓고 경기 중계를 들으며 집 정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웃집의 환호성이 크게 들렸다.


'골이구나!!!'.


급하게 경기 중계로 눈을 돌리니 우리나라의 첫 골이 가나의 골문을 정면돌파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그 사이 큰 아이가 환호성에 놀라 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아이에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골이야! 우리나라가 골을 넣었어!"라고 답했다.


아뿔싸. 내 목소리는 너무도 들떠 있었다.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아이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왕이라도 되는 듯 필요 이상으로 진중한 걸음이었다.


"우리가 한 골 넣었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기분 좋게 자자~. 엄마가 후반전 잘 보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얘기해 줄게~."


애써 아이를 들여보내려는데 또 한 번의 환호성이 터졌다. 세상에나!!!! 그 시간에 바로 옆방인 듯 선명히 들리는 이웃집의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이웃집의 환호성은 우리나라의 골을 의미했다. 곧 내가 보는 화면에서도 우리나라의 골이 터질 것이라는 기분 좋은 신호.


방으로 들어가다 돌아온 아이와 나도 숨죽여 박수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쯤 되니 아이를 일찍 재우는 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같이 보자!!! 평소와 달리 짜증 대신 즐거운 마음으로 야근의 연장을 선택했다.


경기가 종료될 때까지 아이와 손을 맞잡고 이웃집의 환호성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후 SNS를 통해 나처럼 이웃집의 환호성을 기다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있다. 휴일에 진행되는 만큼 두 아이와 손을 맞잡고 응원할 예정이다. 강호 포르투갈과의 대결이어서 일각에서는 16강 실패를 예견하고, 16강을 위한 여러 경우의 수가 언급되고 있다. 상황이 어떻든 우리나라 선수들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힘차게 응원하며 경기를 즐길 것이다. 이웃집의 환호성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힘찬 환호성이 들리기를. 집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바람대로!! 경기 종료 후에도 이웃집의 환호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몹시도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를 정도의 힘찬 소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시어머니의 안 매운 매운 만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