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향하여

오래된 관계를 생각하며

by 이니슨

지루한 것을 싫어한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다. 혼카를 할 때도 이런 성향은 여실히 드러난다. 동네를 걷다가 맘에 드는 곳에 훌쩍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게 딱 그렇다.

익숙한 것을 향하여 ⓒ픽사베이


나흘의 연휴(는 아니지만 연휴 같았던)를 마치고 드디어 혼자가 됐다. 마침 날도 쨍한 것이 어쩜 하늘까지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까 싶은,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한가로운 날의 시작이었다. 오랜만에 책과 노트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찰떡이었다.


상쾌한 기분처럼 새로운 곳을 찾고 싶었다. 자주 가는 곳은 질리는 느낌이었으니까. 기왕이면 기분 좋은 햇살을 가득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싶었다. A카페는 그 조건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마침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테라스 자리까지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나는 몹시도 예민해졌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가 신발을 타고 오르려는 개미를 피해 실내로 자리를 옮겼으나 어수선한 분위기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었는데 직원(인지 알바인지)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와 웃음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익숙한, 내가 좋아하는 B카페가 눈에 아른거렸다.


B카페로 갈까?

이미 음료를 주문했는데? 그것도 시그니처 음료로?

빨리 마시고 나가자!

그럼 너무 지출이 큰 거 아닐까?

가서 젤 싼 걸로 마시자!


마음이 요동쳤다. 아슈라백작이 따로 없었다. 선택은 B카페로 돌아가는 것. 주문한 음료를 빠르게 들이켰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B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B카페는 A보다 북적였다. 그런데 어수선함은 없었다. 무리를 지은 여러 손님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카페를 가득 채웠지만 거슬리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과 커피. 그날따라 활짝 펴 화려하기 그지없는 자줏빛 작약까지 모든 것이 익숙했다. 그제야 평안해졌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를 통해 생기를 찾으려는 성향이지만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안심이 에너지가 되는 날이 있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그렇지 않을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로부터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오래된 관계에서 이해받고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것처럼. 새로운 물건을 들였지만 갖고 있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계속 찾게 되는 것처럼.

익숙한 것을 향하여 ⓒ픽사베이


A카페에서 실망하고 다시 B카페를 찾은 그날, 익숙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만남에 집중하느라 그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편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내게 늘 든든하고 포근한 쉼터가 되는 그들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따스한 봄날, 꽃향기처럼 아름다운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늘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새벽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