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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18. 2023

개학맞이 엄마표 김밥

나는 포케 한 그릇

김밥 싸는 것을 좋아한다. 재료 하나만 달리 해도 색다른 맛을 낼 수 있다. 두 아이는 물론이고 남편까지 잘 먹는 게 김밥을 싸는 가장 큰 이유다. 까칠한 입 짧은 공주님 둘째 아이도 엄마표 김밥 앞에선 한 없이 온순해진다.


김밥 속은 어떤 의도를 갖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나물 반찬을 먹이기 위해서라면 반찬가게를 이용해서라도 나물과 우엉 등을 잔뜩 넣는다. 양파, 쪽파, 파프리카, 당근, 햄에 먹다 남은 치킨 무 등을 잘게 다져 밥과 함께 볶은 후에 다른 재료 없이 김에 말기만 할 때도 있다.


'냉장고 털기'로 식비를 줄이고자 할 때는 남아있는 반찬(예를 들면, 무생채, 멸치볶음 등)에 씻은 묵은지 등만으로 김밥을 싼다. 시골밥상 같은 풍미가 난다.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의 초등 입맛에 맞추고 싶을 땐 동그란 소시지의 반을 갈라 넣어 웃는 얼굴 김밥을 만들기도 하고, 깡통햄을 잘라 하트모양으로 꾸민 김밥을 준비하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최신 유행하는 다이어트식이라며 밥 대신 얇게 채 썬 계란 지단을 잔뜩 넣기도 하고, 두부를 물기 없이 볶아 밥 대신 활용하기도 한다.

채 썬 당근을 볶고 단무지만 추가해 꼬마김밥을 만들기도 하는데 칠리소스나 간장소스, 땅콩소스 등 남아 있는 소스를 총 동원하면 골라 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여력이 돼서 라면까지 준비하면 우리 집은 곧 천국이 된다.

김밥을 싸고 나면 으레 재료가 남는데 잘게 다져 놓고 볶음밥을 하거나 계란말이를 하는 데 쓰면 딱이다. 비빔밥 재료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포케를 만들어 먹곤 하는데, 남은 재료들을 큰 그릇에 모아 넣고 가위로 다지듯이 준비한 후에 현미밥과 채소를 듬뿍 넣고 올리브유와 간장소스를 한 바퀴 두르면 그게 바로 포케다. 흔히 '짬처리' 식단 같지만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러고 보면 김밥만큼 훌륭하고 든든한 메뉴도 없는 것 같다. 특별한 식단이 떠오르지 않거나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냉장고 털이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소박한 메뉴지만 정성만큼은 그 어떤 메뉴 못지않게 풍성하다. 게다가 각 잡고 준비하는 김밥이 아니기에 재료비가 적게 드는 것도 장점이다.



주말이 지나면 개학이다. 확실히 여름방학은 짧다. '왜 벌써 방학이야!'라며 한숨 쉬던 게 바로 지난주의 일 같은데 시간은 벌써 8월 말로 내달리고 있다.


특별히 정해놓은 식단이 없는 오늘 점심에도 김밥을 쌀 예정이다. 오이를 채 썰어 소금에 절이고, 계란을 풀어 지단을 부치고, 햄을 구워야지. 단무지는 없으니 치킨무를 다져 넣고, 묵은지 씻어 놓은 것도 같이 넣으면 상큼한 맛이 날 것 같다. 기분이다, 컵라면 추가!! 


엄마표 김밥의 기운으로 새로운 학기도 힘내자는 메시지까지 꾹꾹 눌러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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