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려 창밖이 온통 새하얳다. 거리를 두텁게 덮인 눈이불 위로 연신 솜뭉치가 내려앉았다. 눈을 굴리고 던지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까지 메아리쳤다.
내게도 분명히 눈을 좋아하던 때가 있었겠지. 눈은 따뜻한 실내에서 내다보는 것만 좋다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뭐야! 눈 왜 이렇게 많이 왔어!
아놔! 일찍 마트 가야 하는데 길 엄청 미끄럽겠네!
한숨부터 나왔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눈은 내게 '즐거움'이나 '설렘'이 아니라 '걱정'이었다. 그렇다. 나는 눈 오는 날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어른이었다.
두 달여 만에 친정부모의 방문이 예정돼 있는 날이었다. 음식 준비를 위해 일찍 마트로 향했다. 겨울왕국 같은 집밖으로 나가 운전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야만 했다.
계속되는 눈으로 제설이 되지 않아 질퍽대고 미끄러운 도로 위로 차들이 엉금엉금 기었다. 나 역시 성실한 거북이었다.
얼른 좀 그쳐라! 투덜대고 있는데 앞에 오토바이 배달 기사가 보였다. 바퀴 네 개 달린 자동차에게도 쉽지 않은 눈길 위에서 그는 양발로 땅을 짚으며 위험하지만 조심스레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진행속도에 따라 속도를 더 줄이고 따라가려니 마음이 딸깍거렸다. 쏟아지듯 눈 내리는 날에도 누군가의 배달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뒷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고마웠다.
아파트 단지로 돌아온 후로는 눈을 쓸고 있는 경비원의 부지런함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쌓인 눈을 퍼내면 쌓이고 퍼내면 또 쌓이는 데도 바삐 움직여 준 덕에 수북한 눈밭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렸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허리 숙여 눈을 쓸어내는 경비원의 옆을 지나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꼭 말로 표현해 그에게 닿게 하고픈 마음이었다.
흩뿌리는 눈 속에서도 배달을 하는 기사, 반복되는 빗자루질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경비원. 돈을 받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지만 마땅히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이었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아이들이 눈놀이 하러 나가자고 보채지 않아서 고마움은 더 깊이, 더 오래 머물렀다. '나가서 놀아줘야 한다'는 부담도 눈이 싫어진 이유 중 하나였던 탓이다. 두 아이는 내 우려보다 더 훌쩍 커 이젠 엄마 없이 둘이 나가 노는 나이가 됐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가 주어졌으니 세상은 온통 고마운 일로 가득했다. 앗싸라비아 콜롬비아~. 둠칫둠칫. 혼자 묵혀놨던 흥을 퍼올렸다.
생각해 보니 고마운 사람들은 참 많이 있었다. 깨닫지 못하며 살아갈 뿐. 시선을 살짝만 돌려도 모든 것이 달라 보이고, 타인을 대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에서 평소와 다른 따스함을 마주하며 알게 됐다.
내게 '걱정'이었던 눈이 '고마움'이 됐다. 여기저기서 고마운 마음이 피어올랐으니까.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 스트레스 완화에도 효과적이라더니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었다.
길이 미끄러워서, 다니기 힘들어서, 나가 놀아줘야 해서 눈을 싫어하던 내게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서,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찾게 해 준 고마운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