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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Mar 29. 2019

육아 7년 차에 알게 된 육아의 현실 BEST 10

독박육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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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실전'이다. 상상 속 육아와 현실 속 육아는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아이를 임신해 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육아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육아와는 전혀 다르다.


상상 속 육아와 현실 속 육아,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육아 7년 차 선배맘으로서 육아의 현실 10가지를 꼽아봤다.



출산보다 무서운 산후·육아 우울증


두 아이를 낳으면서 매번 출산 후기를 많이 봤었다. 첫째는 첫 출산이니 무섭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둘째 땐, 둘째는 처음이니까.


그런데 출산보다 더 무서운 건 산후우울증이었다. 출산은 끝날 것이란 희망이라도 있지만 산후우울증은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와 둘만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하니 내 삶이 너무 우울해졌다. 남편의 퇴근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자꾸 집착하게 되는 나도 싫었다. 예쁘지 않게 풍만해진 가슴과 뚝뚝 흐르는 모유, 수시로 젖을 찾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젖소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스트레스까지 겹쳐 새벽녘에 안 자고 칭얼대는 아이를 집어던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요즘은 육아 우울증이 종종 나를 집어삼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삶은 참 우울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낳는다고 저절로 크는 거 아니구나


나는 내가 스스로 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아이도 낳기만 하면 스스로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낳기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늘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 준 부모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은 후에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남편이 많이 도와줄 것 같지만 비현실적


결혼 전 정혜영-션 부부의 이야기를 많이 봤었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 엄청 많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남편은 평일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주말에도 남편은 피곤해 하는 날들이 많다. 자연스레 육아와 가사의 상당부분이 나에게 맡겨졌다. 그렇다고 서로가 서로를 원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정혜영-션 부부처럼 살 것 같았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건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내 아이가 천재 같지만 '거기서 거기'


부모라면 아이가 말을 조금 일찍 한다고, 또 일찍 걷는다고 혹은 그 외의 여러 상황들로 '혹시 우리 아이 천재 아니야?'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겨우 옹알이에도 "벌써 엄마(혹은 아빠)라고 했잖아!"라며 호들갑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말을 일찍 하거나 숫자를 빨리 센다고 똑똑한 것 아니고 일찍 걷는다고 운동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중엔 정말 뛰어난 아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거기서 거기다.



둘째가 딸이어도 첫째가 아들이면 아들


둘째를 임신 중일 때 딸이라는 것을 알고 '귀한 딸로 키워야지~' 다짐했었다. 나는 정말 딸을 원했다. 아들인 큰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웬걸~. 딸아이는 아들보다 더 아들 같다!!!


노는 것도, 하는 말도 모든 것이 큰 아이를 쏙 빼닮았다. 둘째들은 첫째의 성향을 많이 따라간다고 한다. 늘 같이 노는 사람이 오빠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 켠이 쓰린 것은 왜일까..


누가 딸아이를 보며 "누구 닮았나~?"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 오빠 닮았지!"



때로는 내 자식 아닌 부모님의 자식


분명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이지만 부모님의 자식인 듯싶은 순간들이 있다. 육아에 나의 의견보다는 부모님의 의견이 더 중요할 때도 있고, 부모님이 나보다 아이에 대해 더 잘 아시는 듯 결정할 때도 있다.


물론 부모님은 이미 아이를 키워본 '조상맘'으로서 배울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 아이 육아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는 '이 아이는 내 아이인가 부모님의 아이인가' 싶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고 싶다


첫아이를 낳기 전 '어린이집 절대 빨리 안 보낼 거야. 5살까지는 데리고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 무식했다. 애를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기에.


일단 낳고 나면 돌만 돼도 보내고 싶어 안달이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 없이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다. 아이도 집에서 엄마(혹은 아빠)와 둘이 있는 것보다는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고 규칙이나 예절도 배우고 훨씬 유익할 것이라 합리화도 시킨다.


둘째 때는 이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첫째에 비해 둘째의 경우 어린이집에 빨리 가는 비중이 더 큰 것 같다.


나쁜엄마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아이도 사는 거다. 내 몸이 편해져야 즐거운 마음으로 육아를 할 수 있는 거다.



좋은 것 다 사주고 싶지만 얻는 것도 복


아이를 낳기만 하면 헐리웃 배우의 2세들처럼 멋지고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옷이며 신발, 비싸도 너무 비싸다. 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못 사주는 이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은 알까~.


좋은 것 얻는 것도 정말 복이다. 큰 아이 때는 첫째여서인지 누군가에게 얻어 입힌다는 것이 불편했는데 둘째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 잘 얻는 것도 복이다.

둘째는 다행히 자기 복을 스스로 타고났다^^.



홈드레스에 우아한 엄마를 꿈꿨지만..


홈드레스를 차려 입고 곱게 화장한 얼굴로 다정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우아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에서 난 무릎 튀어나온 헐렁한 추리닝 바지에 목 다 늘어난 티셔츠 하나를 걸쳐 입고 소리만 질러대는 버럭엄마다. 목소리에 화가 장착돼 있다.


홈드레스? 화장? 마음 편히 화장실 가서 볼 일 볼 시간도 없는데 무슨 홈드레스와 화장이란 말인가.


어쩌다 외출할 때 입을 옷도 없다. 옷이 안 맞거나 아이와 함께하기 적합하지 않은 옷 뿐이다. 홈드레스는 정말 드라마 속 어떤 엄마들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나마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시간이 좀 생기지만 그마저도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 널고 마트 장 한 번 보고 오면 하원 시간이다. 엉덩이 좀 붙이고 앉아 있으면 뭐든 한 가지는 부족한 상태로 아이를 맞이하게 된다.


정녕 나를 꾸밀 시간같은 건 사치란 말인가. 적어도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남의 자식은 다 이뻐


미안한 얘기지만 때로는 아이들이 '웬수'같아 보일 때도 있다. 어쩜 말을 이렇게 안 듣는지. 하지 말라는 것은 또 잘도 골라 한다.


내 자식 키우는 것은 이렇게 너무도 힘들고 화가 나는데 남의 자식은 다 예뻐 보인다. 심지어 바닥을 구르며 떼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내가 이렇게 이중적인 얼굴을 가진 엄마였단 말인가' 좌절하기도 수차례.


남의 아이는 어차피 잠깐 보고 말 거니까,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그 모습에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걸까. '내 아이를 옆집 아이 보듯 하라'는 한 전문가의 조언이 생각난다.





상상 속 육아와 현실 속 육아는 이렇게 참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아이는 사랑스럽다'는 것.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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