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볶음을 했다. 대체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에 갑자기 떠오른 메뉴였다. 어릴 때 내 자존감이기도 했던 엄마표감자볶음. 내가 자랑스러워했던 그 맛을 가족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점심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 내 도시락통엔 종종 어른의 맛이 자리하곤 했다. 어린이보단 어른들이 좋아하는 맛. 친구들 도시락 속 꼬마돈가스와 비엔나소시지, 케첩 등을 훔쳐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점심시간에 일부 학생들이 반을 돌며 친구의 반찬과 자신의 반찬을 바꿔 먹곤 했는데 내겐 바꿔 먹자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마치 그게 인기의 척도라도 되는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여러 번.
하루는 도시락의 반찬통 두 칸에 양미리라는 작은 생선 볶음만 가득 들어 있었다.
세상에나.
국민학생의 도시락 반찬에
양미리 볶음이라니!!
게다가 그것뿐이라니!!
집에서 맛있게 먹기는 했지만 도시락 반찬용으로는 아니지 않나!! 창피해서 반찬통의 뚜껑을 열어놓지 못한 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도둑처럼 밥을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그때 엄마가 양미리 볶음만 싸줘서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이제야 웃으며 얘기해도 엄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어머 그랬니~~?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머쓱해할 뿐.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유는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지다 보니 그저 당시 엄마의 매일이 안타깝고 애잔하게 와닿는다는 게 중요하다. 더욱이 엄마는 식당일이나 미싱일 등을 하는 워킹맘이기도 했다.
두 아이가 방학을 해 매일 삼시 세끼를 챙기고 있기 때문일까. '매일 도시락을 싸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것이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국민학교 시절 도시락 반찬에 자신 없던 내가 조금이나마 기를 펴는 날이 있었다. 반찬이 감자볶음인 날이었는데, 내 반찬 중 (아마도) 유일하게 인기 있었던 메뉴였을 것이다. 간장과 고춧가루가 적당히 어우러진 흔한 감자볶음이었지만 맛이 꽤 괜찮았던 모양이다.
같은 반 남학생인 A가 유독 내 감자볶음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덕분에 친구들의 관심도 꽤 받았고. 그래서 감자볶음은 당시 내 자존감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었다.
바로 그 반찬 감자볶음이 불현듯 떠오른 건 방학을 시작하면서 며칠간 돌밥돌밥에 지쳐있던 날이었다.
"또 밥 때야? 아~ 또 뭘 해 먹이냐~~"
한숨이 목 끝을 따갑게 관통하던 여름날. 냉장고에서 발견한 감자를 보자마자 엄마식 감자볶음이 생각났다.
커다란 감자 두 알의 껍질을 까 반달 모양으로 썰고, 팬에 넣은 후 물과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을 눈대중으로 적당히 넣는다. 설탕 대신 꿀 한 바뀌 휘리릭 돌려 넣고 뚜껑 덮어 끓이는 아주 간단한 레시피. 마무리로는 통깨를 뿌려줘야 고소함과 비주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
준비하는 내내 엄마를 생각했다. 그 시절 도시락을 싸던 엄마의 고단함에 대해. 반찬투정을 하던 나의 무지함에 대해. 학기 중엔 급식을 먹이는 나의 편안함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만든 엄마표 감자볶음은 다행히 가족들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이제 반찬 고민할 때마다 감자볶음이 생각날 것이다. 그것을 먹을 때마다 지금의 내 나이대였던 엄마를 생각하겠지.
어린 내 자존감이었던 감자볶음은 30년이 지난 지금, 엄마의 고마움을 깨닫게 하고 나를 돌밥에서 구원하는 고마운 반찬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