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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Jul 27. 2024

쑥떡 한 봉지의 행복

알고 보면 내 옆엔 늘 그것이 있었다

 봄날의 이야기다. 행복의 본질에 대해 알게 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은행에 갔다. 은행이 문을 여는 9시에 딱 맞춰 들어가려고 아이들이 등교를 하자마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착한 시간은 8시 58분. 9시가 돼도 은행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요즘은 은행 쉬는 날도 있나?’ 급히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아뿔싸. 은행 문이 여는 시간은 9시가 아니라 9시 30분이었다.


육아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온 시간 동안 바뀐 건지, 그동안 내 기억에서 잊힌 건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내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은행 ‘오픈런’을 해서 빨리 볼 일을 보고 돌아오려던 내 계획은 이렇게 어이없게 막을 내려야만 했다.


어쩌겠나, 별 수 없지. 단단히 닫힌 은행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근처 커피숍에서 차나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서두르느라 아침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따뜻한 카페라테를 마시니 속이 든든해지는 것도 같았다.


30여 분 후 은행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너덧 명의 손님이 있었다. 내심 ‘그럼 30분에 다시 오픈런해야지’ 싶었는데 이 역시 철저하게 실패했다.


순서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창밖으로 한 할머니가 보였다. 그는 거리에 자리를 깔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채소와 쑥떡을 늘어놓고 있었다.


‘쑥떡 맛있어 보이네~. 돌아갈 때 한 봉지 사 가야겠다.’

Image by 나방 불 from Pixabay


평소엔 관심도 없던 쑥떡이 왜 그렇게 맛있어 보였을까. 마음은 이미 창밖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은행 볼 일을 마치자마자 새 신을 신고 폴짝 뛰는 듯한 설렘으로 할머니의 좌판 앞에 섰다.


“할머니. 쑥떡 얼마예요?”
“한 봉지에 3,000원이유.”


겨우 3,000원이라고? 요즘 물가를 생각했을 때 꽤나 저렴했다. 현금 3000원을 내고 쑥떡 한 봉지를 얻었다. 투명 봉지 속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쑥떡의 자태가 아름다웠다.


주름진 손으로 쑥떡을 내게 건네시는 할머니는 “좋은 하루 보내유~”라며 푸근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 역시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묘하게 흥겨웠다. 손에 들린 검은 봉지는 팔랑팔랑 춤을 추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쑥떡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진한 쑥 향이 퍼지면서 달큼한 맛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맛있네?’ 쑥떡 세 개를 연달아 먹는데 마음이 간질간질한 게 이상했다.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것도 같고.


그건 행복이었다. 겨우 쑥떡일 뿐인데 행복했다.


'행복은 매번 나를 비껴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날이 있다. 아니다. 때로는 수시로,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를 지배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누군가 그랬듯 행복은 늘 이렇게 곁에 있었나 보다. 불행하다는 프레임에 나를 가둔 사이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그것은 늘 나에게 있었던 모양이다.


Image by Victoria from Pixabay


생각해 보면 행복은 아침부터 나를 좇고 있었다. 은행 문 여는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은행에 도착했을 때 '괜찮아.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시 오픈런 도전하지, 뭐.'라는 쿨한 마음이 있었고, 근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실 때는 '의도하지 않은 시간이 주는 여유도 나름 좋구나.' 싶었다. 평소 같으면 수십 번의 한숨과 짜증이 뒤섞였을 일들이 몰아치는 데도 '괜찮다'라며 나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했던 날이었다.


내 마음이 등대처럼 나를 밝히며 ‘부정’에서 ‘긍정’으로 이끌었다. 나를 보며 푸근하게 미소 지어 준 좌판 할머니는 내가 행복을 깨닫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행복은 결국 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그를 통해 깨달았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남은 쑥떡을 냉동실에 넣었다. 꽁꽁 언 쑥떡을 볼 때마다, 그것을 하나씩 꺼내 해동시킬 때마다 그날의 마음이 떠오른다. 덕분에 틈틈이 행복의 비밀을 떠올리고, 또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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