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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슨 Aug 10. 2024

군고구마와 개다리춤

행복의 현 위치는 어디?

지난겨울 어느 날의 이야기다.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고구마를 구웠다. 아이는 다른 간식을 원했지만 미안하게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얻어 온 고구마를 기어코 꺼낸 것이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만 같은 현실이었는데 고구마 구워지는 냄새는 참 달았다.

Image by UmmuUmr from Pixabay


돌아보면 지난 2년은 내 삶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한 해는 코로나로 격리 생활을 한 탓인지 심리적으로 위축돼 세상 모든 것이 우울했다. 이듬해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아 ‘이러다 개미 허리 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미래는 불투명했다. 외벌이 남편은 매일 밤낮없이 바쁜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히 있는 내가 한심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또 우울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한 거야!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행복을 찾고 싶었다. 이제 좀 행복해져도 되지 않냐며 하늘을 원망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가계까지 휘청이던 어느 겨울날, 시어머니께 얻어 온 고구마를 간식으로 준비하던 참이었다. 막 꺼내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고구마를 한 스푼 퍼 먹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머 대박! 완전 맛있어!!”
“진짜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지?”


아이도 맞장구쳤다.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 불어 먹느라 모든 시름은 까마득히 잊혔다. 갑자기 신이 났다. 그대로 일어나 둠칫둠칫 몸을 움직였다.


고개는 까딱거리고, 팔은 허수아비처럼 휘젓고, 다리는 개다리춤추듯 흔들었다. 아이도 덩달아 다리를 후르르 떨며 춤을 췄다. 창문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또 한참을 웃어댔다.


한바탕 춤판을 벌이고 남은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참 맥락 없게도, 행복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행복이라니. 이처럼 사소한 게 행복이라니. 동화 <파랑새>의 이야기처럼 행복은 이미 우리 곁에 있었구나, 불현듯 행복의 본질이 와닿았다. 그토록 잡고 싶었던 파랑새는 결국 나에게 있었다.


갓 지은 밥의 냄새, 잠든 아이의 얼굴, 거실을 비추는 햇살, 내게 딱 알맞은 목욕물의 온도… 그러고 보니 일상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소한 것들이 참 많기도 했다. 고구마가 쏘아 올리고 개다리춤으로 완성된, 참으로 뜬금없이 알게 된 행복이었다.


그날 이후로 삶의 모토가 생겼다.

‘현실이 녹록지 않아도 그냥 웃어버리자~! 행복과 불행을 가르지 말고 개다리춤이나 추자.’


Image by 비공개 from Pixabay


그래서 “일단 개다리춤이나 추자!”를 주문처럼 외운다.


우울이 찾아와도 일단 개다리춤이나 추자!

짜증이나 화가 나도 일단 개다리춤이나 추자!


주문을 외우면 마법처럼 병들었던 마음도 치유되는 기분이다. 막다른 길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아 설렌다. 아주 사소한 행복도 찾아낼 준비가 된다.


그러니까, 일단 개다리춤이나 추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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