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빈곤이란

서글픈 계산기를 두드리는 밤

by 이니슨

"아빠가 다시 청소 일을 시작했는데 다리가 아파서 못 하겠다더라. 어쩔 수 없이 어제부로 그만뒀다."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해졌다.


10년 넘게 서울의 호텔을 누비며 청소 일을 하던 아빠가 멈춰 선 건 지난해 초였다. 평소처럼 일하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을 뿐인데, 결과는 어깨 골절과 수술이었다.


재활을 마친 후 조금 더 쉬라는 의사의 만류에도 아빠는 기어이 일터로 향했지만, 이번엔 다리가 말썽이었다.


결국 아빠는 그날의 사고 이후 다시는 예전처럼 일하기는 힘들어졌다.


"아빠,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아?"

"무슨 소리야, 아직 이렇게 팔팔한데!"


아빠는 조만간 아픈 다리를 끌고서라도 어떻게든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자식의 걱정보다 생존 본능과 가장의 책임감이 앞서는 분이니까. 그런 아빠가 고마우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생겼다.


비슷한 시기, 칠순을 훌쩍 넘기신 시아버지도 평생 몸담으셨던 일자리에서 물러나셨다. 두 아버지 모두 '실직자'가 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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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제 자식이 나서야 할 때라는 신호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걱정 말고 쉬세요, 제가 용돈 넉넉히 드릴게요"라는 말 한마디를 뱉지 못한다. 어둠처럼 쏟아지는 한숨을 삼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흔의 빈곤은 참으로 염치없고 애달프다.

머릿속으로 수만 번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은 늘 하나로 귀결된다. '죄송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다'는 내 답답한 현실뿐.


수입을 잃은 부모님께 용돈 한 번 편히 못 드리고, 내신이 중요한 아이에게 사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며, 나를 위한 영양제 한통조차 장바구니에서 덜어내야 하는 삶. 마흔의 빈곤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가족 모두의 것이었다.


손에 쥐어진 건 빚과 쪼그라든 통장 잔고뿐이지만 열심히 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왔다. 절망에 잠식되지 않으려, 지금은 그저 잠시 잠수 중일뿐 곧 수면 위로 솟구칠 거라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한 번씩 이렇게 무너진다. 어쩌면 벼락처럼 쏟아지는 절망을 '희망'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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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희망은 곧 내일이 오는 것'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을 믿고 싶다. 비록 지금은 온통 깜깜하지만 내일은 올 것이고, 몸서리쳐지는 어둠 속에도 볕은 들 거라고.


그러니 별수 있나. 오늘도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 하루를 버티고, 또 다음 하루를 살아내는 수밖에.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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