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입자가 되었지만 나는 기울지 않는다

마흔의 재정비 1. 무너진 게 아니라 재정비 중입니다

by 이니슨

이사를 했다. 변화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크기를 좁혀가는 이사였다. 소유주였던 나는 이제 세입자가 되었다.

속이 쓰렸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주거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엉덩이 붙이고 누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집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를 시험받는 날이 있다.


이삿날, 짐이 하나둘 내려질수록 마음은 자꾸만 어두워졌다.


많이 비웠다고 생각했는데도 갈 곳 없는 짐들이 방마다 쌓여갔다. 큰 집에 맞춰 쓰던 가구와 가전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툭툭 튀어나왔다. 들뜬 벽지 모서리, 틈새의 곰팡이까지. 미처 보지 못한 하자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이고, 내 팔자야."


단전 깊숙한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눌러두었던 서글픔이 꿈틀거렸다. 더 무너지기 전에 얼른 마음을 붙잡았다.


우리 가족 편히 누울 곳이 있으니 그걸로 된 거야.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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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거실만 부지런히 치운 후 넷이 같이 누웠다. 부모의 사정은 모른 채 이사하기 싫다며 울던 딸아이가 말했다.


"아직 이 집에 적응이 덜 돼서 호텔 놀러 온 것 같고 좋네. 캠핑 온 것 같기도 하고."


별것 아닌 말에 네 식구가 바닥을 뒹굴며 웃었다.


맞네.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겠네. 늘 소풍 나온 것처럼.


내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롤러코스터 같았다. 슬그머니 올랐다가 순식간에 내리 꽂히는 시간들이었다.


이젠 안다. 집의 크기는 줄었지만 내 인생의 크기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비록 지금은 형편이 기울었지만, 내 인생까지 기운 것은 아니다. 인생은 한 번의 하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잠시 지쳐 있던 용기와 희망을 다시 세워본다.


마흔이 되니 깨닫는다.

이 정도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무너지는 건 세상이 아니라 마음이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으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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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줄일 수 있다. 소비도, 욕심도, 기대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만은 줄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잠시 넘어져 있었을 뿐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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