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도시락 싸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되길
마케팅 관련 사업을 하는 남편은 늘 바쁘다. 업무의 특성상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아이디어를 짜고 술을 마시는 업무가 이어졌다. 미팅이 계속돼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건 이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다. 점심밥과 저녁밥도 대부분 거래처 담당자들과 함께 했다. 특히 저녁밥은 술로 이어지고.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남편은 여전히 바빴다. 코로나가 걱정되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러다 최근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남편은 주로 사무실에 머무르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꼭 필요한 미팅 외에는 거래처 담당자들과의 만남도 갖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사무실에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졌다. 점심과 저녁 모두.
어떤 날은 컵라면에 햇반을 먹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급하게 소고기 장조림을 해서 출근하는 남편 손에 들려 보냈다. 대충 먹지 말고 이거라도 먹으라고. 처음에는 장조림, 멸치볶음같이 반찬 하나씩을 챙겨 보냈는데 최근에는 반찬 여러 개를 준비, 아예 도시락을 싸고 있다. 특별한 반찬이 아니어도 나름의 구색을 맞춰서~.
하루 이틀 도시락을 챙기다 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도시락을 싸놓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도 꽤나 큰 성취감을 줬다.
초등학생 때였다. 아마도 4~5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는 급식이 아니라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두 칸짜리 반찬통에 양미리 볶음만 가득 싸준 것이었다. 그 어린애 도시락에 양미리 볶음이라니. 그것도 양미리 볶음만이라니!
꼬마 돈가스나 소시지볶음 같은 것이 반찬이던 친구들의 도시락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날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반찬통을 열지도 못하고 혼자 앉아 열었다 닫았다를 하며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 때문에 나는 내 아이들 도시락은 정말 신경 써서 싸줘야지 했는데 이젠 소풍 때 아니면 도시락 쌀 일이 없다. 물론 그 한 번의 도시락으로 부담을 느낀 적도 있지만, 나는 늘 도시락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그 로망을 요즘 남편의 도시락으로 풀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다 보니 삶이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곤 했는데 남편의 도시락을 챙기며 의외의 재미를 찾았다.
하루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나 요즘 당신 도시락 싸는 거 너무 재밌어. 계속 싸줄게~"
남편에게서 돌아온 답은 내게 현실을 일깨웠다.
"계속 도시락 싸다가는 망해!"
그렇다. 계속 이런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 유지돼서도 안 된다. 더욱이 남편은 사람들과의 미팅이 잦은 업무다. 그 업무가 '정지'된 상태가 오래 지속돼서는 안 된다. 이건 나의 '재미'보다 우리 가족의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그 중요한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미안. 내 생각이 짧았네.
그래도 당분간은 도시락 열심히 싸줄게~. 곧 좋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