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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당신에게 진심일 것이다

사람관계에서 양적 팽창보다 중요한 건 질적 성장이다

by 이니슨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고, 그들과 어울리는 공간의 분위기도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만남에서는 '지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마음은 한동안 이어져 어떤 만남도 갖고 싶지 않아진다. 갑자기 사람들을 만나는 게 피곤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시간에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러면서도 외롭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는 싶은데 또 만나기 싫은, 묘한 감정이 나를 파고들곤 한다.




언제였던가. 집에만 있으면서 우울해하는 나를 친구들이 한 커피숍으로 불러냈다. 그때도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기 싫은, 요상한 상태였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한옥으로 지어진 예쁜 커피숍의 마루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바로 눈 앞에서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내리는 비를 바라봤고, 처마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었고, 흙으로 된 마당에 물이 고이는 것을 봤을 뿐. 그러다가 한 친구가 입을 뗐다.


"우리 진짜 신기한 게, 이렇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어도 불편하지가 않아."


그랬다. 우린 같이 커피숍에 갔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한동안 각자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같이 있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당시에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아무 말하지 않아도 편하지만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무 말 없는 시간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 불편함을 만들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 말에 100% 집중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말이 끝난 후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니까.


그뿐 아니다. 차를 마시는 속도, 찻잔을 들 때 손의 움직임, 차를 마실 때의 입 모양, 차를 목으로 넘길 때의 소리, 찻잔을 내려놓은 후 손의 위치까지. 편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사람과의 만남 후에는 '아까 그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 '내가 무슨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까.' 곱씹기까지 한다. 결국 그와의 만남에 필요한 에너지 양이 너무도 커 녹다운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한동안 1대1 만남은 기피하기까지 했다.


왜일까. 분명 호의적인 관계의 사람인데 왜 어떤 이들과의 만남에 이렇게 피로함을 느끼는 걸까.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진심'의 문제다. 진심이 있는 관계냐 그렇지 않으냐는 만남의 피로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심 없는 만남은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부단히 애써야 한다.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는다. 당연히 딱딱한 대화들만 오간다. 반면 진심이 바탕이 된 만남은 굳이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대화들이 있다. 다음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진다.


친구들과 말없이 있던 그 날, 나는 내가 일부 사람들을 만나며 피로함을 느꼈던 게 이것 때문이었겠다 싶었다.




달리 생각하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불편한 상대'였을까 싶다. 내가 진심이 아닌 상태로 사람들을 만났다면 그들에게도 내 마음이 전해졌을 테니 그들 역시 내가 꽤나 불편했을 것이다.




예전엔 상대가 누구든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었다. 한편으론 내가 어울리는 사람의 수가 나를 평가하는 여러 항목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휴대폰에 저장돼 있는 사람들의 수보다 중요한 건 진심이 바탕이 된 사람 수였다. 다음 대화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 말고, 말없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렇지 않아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은 세상인데 사람들이라도 좀 편하게 만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만 만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이제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양적 팽창보다 질적인 성장에 집중하려고 한다. 양적 팽창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마음이 통할 사람이라면 그들과 진심 어린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진심으로 다가갈 것이다. 내게 진심인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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