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리스트 직장인의 슬픈 고객 ①
저는 회사에서 늘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게 저의 존재 가치이자 의미니까요.
회사를 통해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반대로 많이 희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일이나 급한 일이 생기면 항상 제 차지였구요.
결혼한 상사나 선배들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퇴근하면서 솔로였던 저에겐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계속 반복됐죠.
그러면서도 이게 직장생활이겠지 하면서 이해하고 넘어갔구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이건 진짜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야근이나 주말 근무가 당연해지면서 왠지 나만 희생양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구요.
그런데도 상사는 "기획 과장은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만능이어야 해!"라고 말했죠.
부하직원들에겐 빨간펜 선생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구요.
이런 말들이 저에겐 너무나 잔인하게 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다행히 어쨌든 회사에서 인정도 받고 승진도 동기들에 비해 빨랐죠.
그 당시 저는 워라밸을 희생하고 시간을 갈아 넣었으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구요.
사실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한건데 말이죠.
갑자기 제 이름이 불리는 순간은 언제나 비슷했습니다.
“대표님께서 급하게 지시한 일인데 오늘까지 마무리를 해야해. 내일 오전에 보고해야 하니까!”
잔인했던 상사는 야근하라는 말은 안하고 이렇게 지시하고 퇴근을 했구요.
당연히 저와 부하직원들은 밤을 새야만 했죠.
항상 저 때문인 것만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암튼 감정선이 많이 복잡했구요.
그러다 어느 순간 부하직원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과장님, 이것도 우리가 해야해요? 왜 모든 일을 기획이 다해야 하나요? 그냥 부장님께 못한다고 하세요!"
물론 저도 부장님께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용기도 부족했고 뭔가가 두려웠나 봅니다.
그냥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밤을 지샜구요.
그들과 함께 해주는 방법 외에 부하직원들을 위로할 방법이 없더라구요.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도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죠.
아무리 업무를 쳐내도 줄어들지가 않았구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기획실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업무만 생각하면 구역질이 날 것 같고 위아래로 치이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구요.
그렇게 저의 직장생활은 인내와 함께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이 너무 궁해지다 보니까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더라구요.
"도대체 나는 능력이 얼마나 부족하길래 이 놈의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거지?"라고 말이죠.
현실은 마흔 살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퇴직이나 이직도 쉽지 않았죠.
흙수저 출신에 모은 재산도 별로 없었구요.
그러니 무조건 직장생활을 해야만 하는 불쌍한 직장인이었죠.
게다가 커리어나 경력을 아무리 포장해도 내세울만한 내용도 없었구요.
저는 한 회사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한 회사에서 뼈를 묻게 될 것만 같았죠.
차라리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계사나 변호사같은 전문직 자격증 공부하거나,
디자인이나 IT처럼 전문성을 지닌 영역에서 근무했으면 좋았을텐데,
저에게 전문성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구요.
그냥 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경험과 익숙한 직장생활만 남아있는 거죠.
물론 기획실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사람들은 저를 기획 전문가라고 불렀지만,
이것도 그들만 그렇게 생각할 뿐 대외적으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구요.
그러면서 회사가 전부가 되고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퇴직이 두려워지고 다가올 시간이 점점 무서워졌구요.
지금도 회사에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기획이나 인사, 마케팅이나 운영 관리 등은 제너럴리스트 영역이라고 하죠.
이들은 경험 외에 자격이나 기술이 없는 일반 사무직들이구요.
나쁘게 말하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가 있는 소모품들이죠.
회사에 있을 땐 회사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면서 갑질도 하지만,
퇴직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에 불과하구요.
능력도 있는 것 같고 무언가 할 줄 아는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실제로는 아무 능력이 없는 거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너널리스트들은 이 사실을 깨닫게 되구요.
그렇다고 당장 이직을 한다고 해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도 없죠.
어쨌든 제너럴리스트는 회사에서 소모되다가 어느 순간 운명을 다하게 되죠.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다가온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렵구요.
그러니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뭐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