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제(Piaget)는 자신의 세 아이를 키우며 관찰한 것을 토대로 자신의 교육학을 만들었다.
나는 피아제는 아니지만 아이를 셋 낳고 나만의 실험을 하고 있다.
내가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체력, 독서, 습관
1. 체력
영유아기는 평생 쓸 몸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나이다. 대근육과 소근육이 점차적으로 발전하고 정교화되는 나이이므로 자기의 몸을 잘 알고 움직일 수 있는 연습을 해서 신체적인 능력과 체력을 길러주고 싶었다. 4살부터 시작했던 발레는 3년째인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고, 올해에는 일주일에 3번 태권도도 간다. 한 시간 태권도를 하고 놀이터에서 한 시간 마음껏 뛰놀고 집에 오면 밥을 굳이 떠먹여 줄 필요가 없어진다.
꾸준한 운동은 아이의 몸을 튼튼하고 꼿꼿하게 만들어주었다. 바른 자세와 유연한 몸이 발레를 통해 습득한 것이라면, 품새를 외우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은 태권도를 통해 배웠다. 충분히 몸을 움직이니 아이의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신체 지능도 길러지고 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출발점이 된다. 꼿꼿하고 바른 자세는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키고 자신감을 갖게 도와준다. 바른 자세에서 바른 정신이 싹트기 때문이다.
몸을 충분히 움직이면 잠도 푹 잘 수 있다. 아이의 체력과 건강의 선순환은 잘 먹고 잘 자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잘 먹고 잘 자려면 낮동안 충분히 신체를 써야 한다.
낮동안 햇빛을 많이 보고 충분히 몸을 움직였는가?
부모로서 아이를 바라보며 이 질문은 항상 의식하고 챙기려고 한다. 아이가 책상에 앉아만 있는 것은 아이의 신체와 마음의 발달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알렉사 코브의 책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앉아만 있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흡연이다.
자주 몸을 움직이고 나의 신체를 의식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세우는 원칙들은 사실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챙기면서 나부터 바른 자세를 갖고 몸을 충분히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좋은 육아란 부모가 좋은 인간으로 모범이 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2. 독서
만약 내가 아이에게 내가 가진 것 중 딱 한 가지를 물려줄 수 있다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책을 찾아 해결하는 삶의 방식'을 고르고 싶다. 세상에 정보는 많지만 정제되어 있는 지식은 아직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텍스트를 다루는 것을 어려워하지않고 책을 통해 사고가 거미줄처럼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자주 하면 삶에서 만나는 다양한 위기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최재천 박사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출발선을 들고 다닌다'라고 했다. 인간은 세대를 거쳐가면서 이전의 인류가 발전한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었고 그러한 '출발선의 이동'은 책을 포함한 기록을 통해 가능했다. 직접경험으로는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텍스트를 통한 경험은 확장이 가능하다. 주변 환경에 호기심을 갖고 궁금증을 책을 통해 해결하게 되면 개인의 발전도 무궁무진하게 가능해진다.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내재적 기질의 영향도 있겠지만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집안의 환경이 자극적이지 않고 책보다 재밌는 놀잇감이 적으면 당연히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평소에 책을 즐겨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집안의 환경도 안정적이면 조용한 아침에 아이들이 책을 꺼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된다.
부모의 역할이란 신체적인 DNA를 주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책을 가까이 여기고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은 부모가 먼저 해서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책을 가까이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면 아이는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고 살아가면서 부딪힐 여러 가지 문제상황에 대처할 하나의 방법을 갖게 된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건강한 체력을 물려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중에 부모가 없을 때에도 문제상황에 대처할 비장의 무기를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다. 언젠가 우리는 아이들 곁을 떠나야 하는 존재니까.
3. 습관
여섯 살이 되고부터 차차 생활 습관을 잘 길러주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밖에서 입은 외출복은 벗어서 빨래통에 넣고, 유치원 가방에 있는 수저통을 꺼내 주방에 갖다 두기와 같은 일은 매일의 연습을 통해 자동화된다.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몸이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 유치원이 끝나고 태권도를 다녀와서 놀이터까지 놀다가 오면 지칠 법도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자리에 앉아 오늘의 할 일을 마저 하는 것도 습관의 힘이다.
안 하고 자면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이 자동화의 순기능이다. 습관을 들여놓으면 일일이 강요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 인류가 매일 이를 닦게 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기 전에 이를 닦고 이를 닦는 것에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매일 하는 일이기에 매일 할 뿐이다.
뇌과학의 최근 연구들을 보면 습관이란 '꾸준한 반복을 통해 뇌와 신경에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자극이 뇌에 반복해서 들어오면 그러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 신경세포 간의 연결구조에 생물학적 변화가 생긴다. 그러한 뇌의 습관적인 작동방식을 좋은 쪽으로 만들어주면 신경계는 우리의 적이 아닌 친구가 된다. '모든 교육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신경계를 우리의 적인 아닌 우방으로 만드는 것'이란 말이 있다. 생활 속에서 습관의 변화를 통해 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고 이것이 육아와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생활 속에서 자동화되는 습관들을 길러주는 일은 아이에게 허락을 받거나 설득해야 할 일이 아니다. 부모가 먼저 해보고 아이에게도 자동화되도록 반복해야 할 일이다. 통제나 억압이 아닌 습관과 자동화. 좋은 습관들을 많이 길러주는 것이 어린 시절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 3가지는 기본기다.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기본기가 되어야 응용과 활용이 가능하듯,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체력과 독서와 습관이 몸에 배어있으면 수월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본기를 다져주는 일이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자주 흔들린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중요해 보인다. 나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좋아 보이는 정보들을 수집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새롭게 알아가는 것도 있었지만, 마음이 불안해지고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급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추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육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육아도 어차피 하나의 실험일 뿐이다. 정답을 모르니까 이렇게 저렇게 시도해 보는 일이다. 내게는 표본이 셋이지만 셋이 다 같은 것도 아니다. 육아의 본질은 나의 한계를 알아가는 일이다.
미래에 어떤 직업이 아이에게 맞을지 나는 모른다. 지금 무엇을 해주어야 아이가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아이의 적성에 잘 맞으면서 돈도 잘 버는 직업을 나는 모른다. 나는 아이가 어떤 삶을 살지 모른다. 이게 육아의 본질이자 한계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본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아이를 잘 키우기에 앞서 나 스스로부터 잘 키우는 일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생이 100년이라면 나는 아이보다 조금 더 산 것뿐이다. 우리는 같이 커가야 한다. 내가 한 발짝 앞에 있을 뿐 우리는 대등한 인간으로서 삶의 시간을 보낼 테니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은 나부터 해야 한다.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어 나보다 한 발짝 뒤에 있는 아이들을 응원하는 것. 이게 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