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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Feb 19. 2022

아이가 아프면 일대일 데이트가 된다

아파야만 독차지할 수 있는 엄마

열이 올라 달뜬 막둥이의 몸을 껴안고 달래주다 잠이 든 듯싶어 내려놓으려고 하면 다시 앵~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린다.


결국 동이 틀 때까지 가슴을 맞대고 안은 채로 소파에 기대 어설프게 잠이 들었다. 

몽롱하게 잠이 들다 깨다 하면서도 

아이의 이마를 내 볼에 붙였다 뗐다 하며 열이 내리는지 확인했다. 


울다 잠이 든 막내의 입에서는 해열제 냄새가 났다.

 

달큰하면서도 뜨거운 입김을 쌕쌕 뿜으며 내 품에서 가슴을 맞대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애초에 이 아이와 나는 뱃속에서도 배를 맞대며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이만큼 크면서도 열이 나거나 힘들 땐 

다시 탯줄을 달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내 배와 가슴을 파고든다.


배를 맞대고 포옥 안겨 마치 자기 집인 양 내 몸에 붙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면 캥거루처럼 나도 아기 주머니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누나와 형은 어린이집에 가고 혼자 엄마를 독차지하고 누운 우리 막둥이. 


이런 날 아니면 또 언제 혼자 응석 부리고 사랑을 독차지할까 싶어, 힘껏 안아준다. 


오늘 엄마는 너만 볼게...


항상 '얘들아'라는 외침 속에서 한꺼번에 불리던 우리 아이들은 웬만하면 1대 1로 엄마와 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주말에는 온 가족이 부대끼며 지내기 때문에 엄마를 독차지할 시간이 안나는 거였다. 어떻게든 엄마의 사랑을 차지하고자, 응석도 부리지만 관심은 곧 분산된다.


나는 듬뿍 사랑을 준다고 주지만, 아이들 성에 얼마나 찰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가 아픈 날이면 갑자기 일대일 데이트가 된다. 

아이가 아프면 다른 형제에게 옮지 않게 하려고 떨어뜨려 놓고 아픈 아이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병원도 단둘이, 밥도 단둘이, 잠도 단둘이 자게 된다. 찐하게.

사랑이 고파서 아픈 건가 싶을 정도로 엄마에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닯다.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자동으로 드는 생각.

내가 어쩌자고 애를 셋이나 낳았을까. 


남편을 붙잡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어쩌자고 애를 셋이나 낳았을까.

엄마 껌딱지가 된 막둥이를 내가 케어하는 동안, 첫째와 둘째를 열심히 챙기던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좋은 엄마라 아이들이 셋이나 온 거야.
얘네도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은 거지.


이 말에 묘하게 힘이 났다.

그래, 내가 셋을 억지로 낳은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엄마로 골랐다고 믿자.


미래에 대한 걱정,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희망만 갖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 속에서 그때그때 방법을 찾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몸과 마음이 고단한 하루. 그래도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 가족이 밤이 돼서 다시 모이고, 

나의 흩어진 정신도 그러모아졌다.


그래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인간은 사랑하면서 동시에 도망가고 싶을 수 있는 존재지.


아이의 이마에 열이 내리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얘들아, 로 돌아갈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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