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선생님이 이 책을 읽으면 뭐라고 하실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와 <양육 가설>을 읽고

by 대강철저

기존에 사람들이 당연하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책을 보면 흥미롭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면 그렇게 기존의 생각을 깨부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나는 것이 늘 신선한 자극이 된다. 그런 신선함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의 우물이 와장창 깨어지는 느낌이 좋다.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은 나에게 '교육'에 관해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줬다. 마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평생 살다가 사실은 태양이 중심이고 우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믿기 어렵지만 알고 나서는 그제야 '이래서 그런 거구나' 짜 맞춰지는 것들이 있다.


그 두 권의 책은 바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와 <양육가설>(주디스 리치 해리스)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반드시 문제 있는 부모가 있다'는 생각을 깨부순 책이 바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였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존중을 받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도 아이가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부모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학교에서 총을 난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왜? 대체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이 책에서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저 추측해볼 뿐. 청소년기의 우울증과 뇌장애, 친구와의 관계로 인한 뇌의 기능의 악화로 어렴풋이 설명이 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의 아들은 콜럼바인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서 수십 명의 친구와 교사를 죽이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가해자의 엄마가 된 저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자신이 총기난사범의 부모가 된 이유를 함께 찾아가 본다.


책에서 그녀는 변명하지도, 아들을 옹호하지도 않고 오직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교육이 실패한 이유를 찾아간다. 그녀가 남은 인생을 자신의 아들이 앗아간 모든 이들의 삶을 기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돕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콜럼바인 사건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자는 자살방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뇌 건강에 대한 관심을 촉구한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부모의 양육방식이 달랐다면 아이가 자살하려는 성향을 바꿀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나는 <양육 가설>에서 언뜻 보았다. 저자는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생각인 '부모가 아이들을 기르는 방식이 아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양육 가설'이라고 지칭하고 이것이 하나의 가설일 뿐임을 설명한다. 더구나 조곤조곤 근거를 들어 이 가설이 틀렸음을 설명하고 "부모의 양육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사회화되지 않는다." 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사회화되는가?

저자는 양육 가설의 대안으로 '집단 사회화 이론'을 제시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 집단 속에서 사회화된다. 아이들 집단이란 '심리적으로 유의미하고 아이들이 주관적으로 자신과 관계 짓는 집단'이며 그들에게 '적절한 행동 및 태도에 관한 규칙과 표준과 신념을 제공하는 집단'이다. 저자가 양육 가설을 기각하고 집단 사회화 이론을 주장하면서 내세우는 근거들이 놀라웠다.


먼저 교육학 책에서 암묵적으로 내세우는 양육 가설 실험의 근거들이 얼마나 취약한가에 대해 하나씩 짚어간다. 부모의 양육방식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관한 실험은 마치 브로콜리를 많이 먹는 사람이 건강하다의 실험과 비슷한 오류를 지녔다. 즉, 브로콜리의 주당 섭취 횟수와 건강과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거다. 브로콜리를 많이 먹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결론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주기적으로 브로콜리를 먹는다는 것은 식사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의미하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른 건강관리(운동, 건강검진 등)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양육 가설 또한 마찬가지다. 집에 책이 많고 부모가 책을 자주 읽어주고 민주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가정의 아이가 성공적이란 가설은 상관관계를 뜻하지 인과관계는 아닐 수 있다. 책을 좋아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부모의 기질이 아이에게 유전된 것 일수도 있다. 아니면 친구들이 책 이야기를 주로 하는 분위기라 자기도 친구들과 대화하려고 집에서 책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알려주고 아이들이 어떻게 사회화되는지를 '집단 사회화 이론'으로 설명하는데 집단 사회화 이론은 양육 가설이 설명해주지 못한 것들을 설명해준다.


부모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다한들 또래가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책에서도 저자의 아들인 딜런이 에릭과 함께 2인조였기에 총기난사를 하러 간 것이 가능했다는 부분이 떠올랐다. 성인 학살 난동자가 대부분 홀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과 달리 10대 총기 가해자의 25퍼센트가 2인으로 움직인다. 보통 이 2인조의 경우 한 명은 사이코패스이고 다른 한 명은 영향을 심하게 받는 의존적 성향과 우울에 시달리는 조합이다.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에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 둘을 떨어뜨리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어떤 교육을 집에서 하느냐보다 아이의 친구의 역학관계를 알아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두 책에서 공통으로 말한다.


책을 덮으며 "부모 탓이 아니라 친구 탓이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로 쉽게 요약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인간이 자아를 만드는 방식과 사회화가 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음을, 그러니까 아이가 순수한 백지도 아니고 부모 마음대로 주물러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고유한 욕망과 필요를 지닌 존재임을 알려준다.


한편으로는 두 권의 책을 읽으니 머릿속에 질문이 하나 두둥실 떠올랐다.


만약에 오은영 선생님이 이 책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나? 문제 있는 아동에게는 문제 있는 부모의 행동이 있음을 가정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오은영 선생님은 볼 때마다 감탄하는데 어느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들었다.


정말 부모가 문제일까? 어쩌면 고칠 수 있는 것이 오직 부모의 행동뿐이기에 그런 솔루션을 주는 것이겠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든다.

부모가 바뀌면 아이도 바뀌나요? 인간이 그렇게 쉽게 바뀌나요?


내게는 아직도 <양육 가설>의 여파가 남아있다. 두 번째 읽고 있는데도 이해에 시간이 걸린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부모탓을 할 수 없는 어른이라는 사실은 강렬하게 남아있다. 과거 탓을 하는 것도 부모탓을 하는 것도 어째 조금 비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양육 가설을 읽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었다.


세상이 너무 부모를 혹독하게 몰지는 않나 돌아보게 된다.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들은 미래에 속해 있고 부모는 현재에 속해있다. 이 책의 제일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시를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온전한 삶을 열망하는 아들이고 딸입니다.
자녀들은 당신을 통해 왔으나 당신에게서 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나 당신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을 가둘 수는 있지만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당신이 꿈속에서라도 방문할 수 없는 곳입니다.
당신이 그들처럼 되고자 할 수는 있겠으나 그들을 당신처럼 만들지는 마십시오.
삶은 거슬러 가지도 않으며 어제에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_칼린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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