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구석 묵혀 둔 감정

냉장고 구석 오래된 통 하나

by 시나브로

냉장고 문을 열다 보면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있다.


맨 안쪽 구석, 눈높이보다 아래에 있어서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그 칸.


그러다 정리라도 하겠다고 마음먹고 꺼내보면
대개 하나쯤은 그런 게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반찬통.


뚜껑을 열기도 전에 알 수 있다.
안에 있는 건 이제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처음엔, '며칠만 두자'는 마음이었다.
남은 반찬을 아깝지 않게 먹겠다고
투명한 용기에 곱게 담아 넣어두던 마음.


하지만 그날은 바빴고,
그다음 날은 까먹었고,
그다음 주는 아예 냉장고 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묵은 반찬이 되었다.

감정도 그렇다.
그땐 별거 아니라고 넘겼던 말,
미뤄두었던 대화,
한때는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던 장면들
그걸 그냥 두기만 하면,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켜켜이 겹겹이 쌓여서
뚜껑을 열면 냄새처럼 퍼지는 서운함이 된다.
‘왜 이제야 꺼냈냐’는 원망처럼
문을 연 나를 탓하는 그 감정의 흔적.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는
결국 새로운 음식을 담을 공간을 앗아간다.
오래된 통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그 안의 내용물은 더 이상 쓸 수 없는데도
버리지 못한 채 공간만 묵직하게 잡고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이젠 끝났다고 생각한 관계,
지나갔다고 믿은 감정,
이미 의미 없다고 단정 지은 기억.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버리지 못한 채’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의 냉장고 구석에서
그 통 하나를 꺼내드는 순간,
나도 몰랐던 냄새가 퍼져 나온다.
그래서 결국은 정리해야 한다.


미루지 않고, 쌓이지 않도록.
때론 냉정하게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비워내고,
용기를 씻고, 다시 쓸 준비를 해야 한다.

살림은 결국 정리의 반복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릇을 깨끗이 비워야
다음 음식을 담을 수 있고,
마음을 비워야
다음 사랑을, 다음 관계를 담을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그 구석의 통 하나를 꺼내보자.
지금이 적기다.
지금 아니면
또 시간 속에 묻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