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 그리고 기름때
부엌에서 손이 자주 가는 가전이라면
단연 전자레인지와 오븐이다.
급하게 밥을 데울 때도,
간단히 요리를 만들 때도
우린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청소는 자주 하지 않는다.
도어를 열고 닫으며
내용물을 꺼낼 땐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면 여기저기에 기름이 튄 자국들,
고여 있다가 굳어버린 음식물 찌꺼기들,
세월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겉으로는 말끔해 보이지만
안쪽엔 묵은 기름때가 끈적하게 남아 있는 오븐.
마치 내 마음 같았다.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는 척
그저 살아가지만
속은 기름처럼 눌어붙은 감정들로
끈적거리는 날이 있다.
처음에는 작은 튐이었다.
조금만 닦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튐은 굳고,
고착되어 쉽게 지워지지 않게 된다.
감정도 그랬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야’ 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 위에 다른 감정이 덧붙고
그 위에 또 새로운 일들이 쌓이면서
결국은 한 번에 닦아지지 않는 마음의 얼룩이 되었다.
오븐 청소는 단순하지 않다.
기름때는 일반 걸레로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뜨거운 물, 강한 세제, 그리고 시간.
그 모든 것을 들여야
비로소 기름때는 녹아내린다.
마음을 청소하는 일도 이와 닮아 있다.
그냥 “괜찮아” 한마디로 끝나지 않는다.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은
결국 더 깊은 곳까지 퍼져나간다.
그러니 오븐의 기름때처럼
마음도 한 번은 뜨겁게 마주해야 한다.
두려워도 들여다봐야 하고,
손이 더럽혀질 각오를 해야 한다.
힘들게 청소를 끝내고
맑아진 오븐 안을 들여다보면
내 마음 어딘가도 정리된 느낌이 든다.
그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비로소 나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한 것 같다.
우린 때때로
너무 많은 걸 속 안에 눌러둔다.
바쁜 하루 속에서 감정을 미뤄두고,
해야 할 일에 쫓겨 마음을 덮는다.
하지만 그 기름때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안쪽에 눌어붙어
조용히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살림은 삶의 거울이다.
오븐을 닦으며
나는 내 안의 끈적임도 함께 닦는다.
전자레인지 속 돌접시를 들어내듯
내 감정의 원인을 천천히 들어보고,
무게를 덜어내고,
비워낸다.
오늘 하루,
나는 오븐 하나를 깨끗이 청소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조금 더 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