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천사들.
스물 셋,
나는 전통예술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진 다섯 청년들과 함께, 열다섯 개의 나라를 다니며 ‘아리랑’을 알리기로 했다.
떠나기 전, 캐리어에 문방사우와 한복 등을 가득 챙기고
마음에는 딱 하나의 다짐만을 심었다.
‘나는 서예국가대표야.
모든 시선을 서예와 예술에 빗대어 바라보자.’
그리고 세 번째 국가인 요르단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통해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서예의, 아니 예술의 본 모습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었다.
1.
첫 번째 사건은 페트라 신전에서 일어났다.
신전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원형극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영상을 찍기 위해 한복을 입고 움직였다.
하지만 모래바람이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칠게 불고 있어서 힘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그곳에서 엽서를 팔고 있는 한 아이가 다가왔다. 페트라가 프린트 되어있는 사진엽서를 1달러에 팔기 위해.
현금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 하니 그 아이는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착한 사람들 같아서요. 페트라가 주는 선물이에요.”
조그마한 그 소년의 맑은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춰졌을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렇지만 빨개진 내 볼에 부딪히는 모래 바람은 더 이상 따갑지 않고 매우 보드라웠다.
2.
두 번째 사건은 자르카 장애학교에서의 일이다.
요르단의 어버이날이라 불리는 Mother's Day였고,
팀원들은 그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
준비하는 시간동안 아이들의 볼과 이마, 팔과 손등에 아리랑과 태극무늬를 담아주었다.
글씨가 잘 써지도록 가만히 기다리는 아이들의 뽀얀 볼 위에서 움직이는 붓은, 그 어느 종이 위에서 보다도 더 부드럽게 춤을 추었다.
이윽고 아리랑 공연이 이루어졌고, 들어본 적도, 심지어 가사도 모르는 노래에 그들은 열광적이었다.
나의 마음이 오롯이 적힌 아이들의 환한 볼이 행복으로 가득 담기며, 손등에 적혀진 글씨들이 춤을 출 때에는 너무나도 벅찼다.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도록 자연의 선을 보여주는 것이 서예가가 지녀야 할 마음의 전부인데,
그 속에 욕심을 더해서
‘이왕이면 더 멋진 전시장에서!’
‘이것 보다는 더 화려한 액자로!’
작품을 꾸미려 했던 마음들이 부끄러웠다.
페트라의 모래바람에 날아온 예쁜 요정과,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준 자르카의 천사들이
화려함에 혹해서 육안肉眼에 가득 낀 눈꼽을 떼어내주고
심안心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소리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모든 시선을 서예와 예술에 빗대어 보자고 다짐한 내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게 된 날들이었다.
새 글은 매주 화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올라옵니다.
서예인 / 인중 이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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