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 그 뒷이야기.
“漿深色濃 萬毫齊力” 왕승건, 《필의찬筆意贊》
만개의 털로 이루어진 붓은
먹이 깊이 배어 먹빛이 짙게 빛나며, 모든 털이 한꺼번에 힘을 쓴다.
무수한 털들이 하나의 획을 만드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
근 십년간 바라본 촬영 현장은,
수많은 털들이 붓끝으로 모여
작품을 완성해 내는 것과 닮아있다.
전쟁터 같기도 하고,
번갯불에 콩보다 더 작은 것을 구워먹는 것 같기도 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 같기도 한 촬영 현장이다.
나도 그들에 맞추어 급작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을 함께 맞추며 작업한다.
예를 들어
‘A가 서찰을 거의 다 완성해 가는데, 그 내용을 본 B가 분노에 차 서찰을 찢는다.’
라는 대본의 지문이 나온다면 나는 서찰을 과연 몇 장을 써야 할까?
A가 쓰는 모습을 찍기 위해,
서찰의 내용을 3등분으로 나누어 처음 중간 끝, 이렇게 세 버전으로 나눠 쓴다.
중간 부분은 멀리서 배우가 쓰는 모습, 그리고 이따 나의 촬영분으로 두어야 하기 때문에 최소 다섯장 정도.
거의 다 완성된 서찰은 B가 구겨야 하기 때문에 넉넉하게 열장정도 써야 한다.
같은 획이 한 글자 안에 들어가는 것도 피하는 서예가의 마인드를 벗어던지고 이때만큼은 복사기가 된 것처럼 같게 써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해야 작품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찰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상황을 생각해야 하는데,
나머지는 어떠하겠는가?
촬영시에는 감독님의 “컷!”소리에
수십, 수백명의 스텝들이 얼음땡 놀이를 한다.
아주 작은 소품 하나, 배우의 머리카라 한 올, 의상의 주름 한 줄과 창으로 들어온 빛의 각도, 개미의 숨소리와 떨어지는 촛농의 모습, 그리고 단역 배우들 걸음 한 보 까지.
아주 깐깐해도 이보다 깐깐할 순 없다.
그들은 그런 치밀한 계산으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모든 드라마와 영화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길 바라며 만들어진다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를 하며 잊고 있던 사랑의 원초적 감정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현실의 부조리한 상황을 픽션이라는 가면을 통해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한다.
조금은 우울하고 무서운 이야기라도, 그 안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한 시간에서 길게는 세 시간까지, 그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으고 모은 무수한 시간들이 가득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가로 불리는 나의 하루는 과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온전히 바쳐진 적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진다.
오히려 나에게는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 넘겨버린 습작들이 무수하다.
마치 바람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선명히 느껴지는 화면 속 진정한 예술가들.
그들을 보면서 작은 점이 모여
거대한 작품이 완성됨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