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 먹 때들.
손톱 밑에 먹 때가 잔뜩 끼었다.
서랍장에서 손톱깎이를 꺼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잘려가는 손톱을 보니 피자마자 지는 벚꽃이 떠오른다.
봄은 언제나 따뜻하지 않고 늘 화창하지 않다.
만물이 피기만 하는 계절이 아니라 수많은 꽃잎이 떨어지기도 하는 계절이다.
벚꽃이 핀다는 것은 곧 진다는 이야기.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그만큼 죽어가는 것처럼
반대의 것들은 항상 아스라이 맞닿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손톱도, 꽃들도 다시 자라고 또 피어나는 것일 테지만,
저 나무에 꽃이 살포시 겨울잠을 자고
내 손톱 끝에는 세포들이 계속 움직이는 것은 언제 느껴도 참 신기하다.
‘미세먼지로 인해 뿌연 하늘이라도 혹시 피지 않았을까?’ 하며
벚꽃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면
역시나 꿋꿋하게, 게다가 아주 짱짱하게 핀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또 살아간다.
살다보면 고된 역경도 닥칠 것이고,
꾸역꾸역 지내더라도 결국엔 모두에게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 너무 가혹하다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우리가 잊고 살만 할 때 쯤, 벚꽃은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흩날리는 벚꽃 눈을 황홀히 맞으면 떠나가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난다.
일 년 내내 자신을 기다린 이들을 위하여 있는 힘껏 온몸으로 피어내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화려한 꽃눈 인사로,
남겨둔 사랑은 푸른 잎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니.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꽃잎도 아름답게 보였다.
그것이 벚꽃의 삶이라니.
그래서 그 시기와, 그 아픔을 우리는 푸른 봄, 청춘이라고 하나보다.
흔히 정의되는 청춘의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그 조각을 가만히 마주하여 보라고 하면 조각에 베일만큼 힘들었지만,
그 아픔 뒤에 단단한 새살이 고맙게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벚꽃이 다 지고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봄이 시작됨을 예견하는 것처럼.
사실 별 것 없이 왔다 가는 것임에도 정말 소중하다.
사랑도 그렇고, 사는 것도 그렇고.
어찌 되었든 모두 지나갈 것을 알지만, 또 봄에 설레는 것처럼.
곧 잘려나갈 테지만 손톱 밑 먹색은 유난히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