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씨, 글씨.
아니, 성인聖人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렇게 명확하지 못하다니.
서예학과에 들어가기 전 논어를 읽을 때 공자의 태도에 대해서 갸우뚱 했었다.
군자君子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제자A에게
공자는 ‘말한 것을 실행하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 하였는데
군자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또 다른 제자B에게는
‘군자는 걱정과 두려움이 없는 것’이라 하였다.
스스로 반성하여 작은 하자도 없으니
무엇을 근심하며 두려워하느냐고 덧붙여 이야기 하면서.
이처럼 같은 질문에 공자는 단 한 번도 똑같은 답변을 한 적이 없다.
4대 성인이라고 불리는 그는 사실 뚜렷한 주관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날의 분위기에 따라 대답해 준 것일까?
그는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토양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씨앗을 심어준 것이었다. 꾸준함이 어려운 제자에게는 꾸준함의 씨앗을, 근심이 많은 제자에게는 용기의 씨앗을.
言, 말씀 언.
言의 모습은 입에서 말이 하나 둘 씩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이다.
나의 입을 떠나 어느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아주 깊게 새겨지고 있는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이 자라서 향기로운 꽃이 되었다면 참 다행이지만,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로 자랐다면 어쩌나.
내가 심어준 말의 씨앗이지만 커가는 모습을 내가 매번 고쳐내는 것은 여간 쉽지 않으니,
처음 씨앗을 고를 때 가장 주의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어떤 말씨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생김새가 같은 ‘아’ 와 ‘아’ 가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ㅇ’과 ‘ㅏ’의 합자인 ‘아’가 모양이 뒤집혀서 ‘우’의 모습을 띌 수도 있고
어쩌면 ‘오’가 될 수도, 정말 ‘어’가 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니 종이 위에서 먹빛 잠옷을 입고
오래도록 긴 잠을 자며 나의 작품으로 불리는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말로는 아쉬워 종이 위에 재워둔 것인데
과연 저 아이들이 자라서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나의 손을 타고 종이에 심어진 저 글 속의 씨앗은
정말 세상을 밝힐 수 있는 아름다운 글씨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