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고민의 밤.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근원지를 만지지 않고
시간과 함께 그저 두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깊은 생각은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으니.
그러던 어느 날, 걸어가는 내 앞에 낙엽 두 장이 턱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은 꼭 꽃의 형상이지만 꽃이 아닌 잎이었다.
땅에 떨어져도 꽃이 되고 싶은 잎새들.
가만히 바라보는데,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내 마음을 오롯이 관찰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내뱉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고통이 산출되었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힘든 것은 열심히 탄생시킨 작품이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예술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을 때
‘어린 아이가 바라보는 맑은 마음’을 최우선으로 지키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주일 간 빛을 받고 아름다움을 내뿜었지만
전시가 끝나면 내 방 한 구석에서 먼지나 먹게 될 운명을 바라보는 것도,
‘쓰다가 망친 작품 있으면 나를 달라.’는 농담을 듣는 것도,
서예를 한다는 나만 보면
무작정 ‘좌우명 한번만 그냥 대충 써서 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실없이 웃는 것도,
반 강제적으로 작품을 가져가면서
‘너무 고마우니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먹어라.’는 사람들의 말에
차라리 밥값을 돈으로 주었으면 싶은 괴로운 생각까지.
그런 생각이 하나 둘 손을 들고 일어나면
마음에 먼지가 쌓여서 ‘맑은 마음’이 점점 탁해져가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작품의 가치’를 ‘값어치’로만 환산시키는 작가가 된 것 같아 속물스럽다가도,
주황 불빛 아래 소의 핏물을 제물삼아 작품들을 맞바꾸는 내 처지가 처량했다.
그렇다고 아니라며 당당히 이야기도 못한 채 괜찮은 척 열심히 숨겼다.
그러면 또 어떤 이는 이런 나를 보고 ‘역시 예술가.’라며 치켜 세워주는 모습에 한숨 쉬면서.
<평생 힘들고 처절하지 않아봤다면 예술가라고 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은 들을 때마다 마음이 꺾인다.
아름다움을 갈구해야하는 예술이 처절해야만 하다니, 처절하다.
찬바람만 세차게 부는 깊고 어두운 겨울 밤 같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
아름다움도 그 나름일 것이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뭘 보고 추하다 해야 하는지.
예술엔 뚜렷한 답이 없으니 이 밤의 고민도 또 다른 밤의 고민이 안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