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감을 깨워준.
어릴 적 듣던 전래동화와 동요들,
맡았던 다양한 향기들과 만지며 느낀 물건들,
게다가 맛보았던 다양한 음식들 까지.
그 모든 것들은 머리와 가슴속에 남아 삶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의 유년시절 사진을 보면, 근처에 글씨가 한가득이다.
놀이터보다도 전시장을 더 많이 다녔고,
크레파스보다도 붓을 더 많이 잡고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 줄 모르듯이
우리 세 자매는 어느새 온몸 가득 먹방울이 스며들었다.
그들은 먹비 내린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나는 내리는 그 비의 맛까지 궁금해했다.
아기가 간이 없는 이유식에서
얼큰한 김치찌개를 점진적으로 맛볼 수 있는 것처럼,
어느 부분을 맞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맞게 된 보슬비.
이제는 보슬비가 느닷없이 소나기로 변한다고 해도
그 빗속에서 춤출 수 있게 되었다.
비에 젖은 그 옷은 이제 너무 낡았으니,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어떠하냐는 사람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돌고, 또 돈다는데,
언젠가 이 옷도 다시 유행하지 않을까.
먹빛은 달처럼 은은하니
낮의 하늘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반짝이는 것만 주목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 밤은 찾아오니까,
내 옆에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그 밤이라도
달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날 것이니.
어느 밤, 내리는 빗속에서 출 춤을
열심히 연마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