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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중 이정화 Oct 15. 2019

열 개의 노, 한 척의 배.

우리는 모두 선주(船主)다.



인터넷은 정말 가상세계일까?



아무리 아날로그의 방식을 고집하더라도

인터넷 세상 역시 나에겐 '현실세계'이다.

먹을 갈아 붓을 들고 종이 위에 작품을 만들었어도,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전원을 켜서 그 세계의 문을 두드려야 하기에.


어느 날,

작품 설명을 메일을 통해 보내기 위해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글을 쓰다가 눈이 뻑뻑해졌다.

피곤한 눈을 좀 쉴 요량으로 양 팔을 포개서

그 위에 볼을 대고 엎드렸다.

   

나의 시선 끝에는 빛을 내뿜는 모니터가 아닌

고요한 자판이 있었는데,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와 꼭 닮아있었다.    


감각만으로도 어디에 무슨 글자가 있는지 알고 있어서,

굳이 바라볼 일이 없는 키보드를 보니

나의 열 손가락은 노가 되어서

지금까지 저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판의 위치를 다 외우고 나서는

그 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간 적은 없었다.

나의 시선은 언제나 모니터에게만 있었고,

잘못 썼다 싶으면 나의 약지와 소지가

지우개 버튼을 눌러 아주 빠르게 일을 처리해주었다.   

깊은 생각은 사치로 여겼던 일도 적지 않다.


노를 쥐고 있는 선주가 방향키를 잘못 움직이게 되면

배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격한 감정으로 노를 젓다보면

배가 완전히 뒤집혀서 타고 있는 사람들이

바다에 우르르 쏟아져 빠져 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배 위에선 큰 죄책감은 없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노를 저어

빛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공인들이 전부니,

장난으로 살짝 휘저은 노는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따지고 보면 이 배는 실체가 아니잖아?



배주(舟)의 옛 모습.




정말 그럴까,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정지되는,

와이파이와 데이터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일자리를 구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누군가가 쓴 한마디에

지친 일상을 위로받기도 하는데.


인터넷 세상은 정말 현실세계가 아닌 걸까?


정보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배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타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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