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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중 이정화 Oct 11. 2019

또 다른 체취

당연한 나의 향기



“어머나, 강사님이세요?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실 줄 알았는데! 특이하네.”

“젊은 아가씨가 서예를 한다고? 참 별나네.”

“참 특별한 재주를 지녔어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특이하고, 별난. 참 특별한 서예.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서예를
‘특별’히 여긴 적이 없다.

자칫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로 들려서

지필묵연이 서운해할까, 하지만 사실인걸?


어릴 적 나에게 서예학원 즉, 서실書室은

집과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함께 서실을 운영하셨기에,

유치원 버스는 집이 아닌 서실에 나를 내려주었고,

그곳은 벼루와 먹이 맞부딪히면서 사각거리는 소리와

강력한 묵향墨香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서실에서 공부하는 언니들 옆에 앉아서

입은 오늘의 하루를 재잘대며

손으로는 언니들의 벼루에 쉼 없이 먹을 갈았다.

참새처럼 재잘대던 소리가 흥분해서

점차 독수리가 되어가면 엄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눈치가 빠르던 나는,

순간 입을 닫고 손으로만 먹을 열심히 갈면서

엄마에게 살짝 눈웃음을 쳤다.


그럼 이때다 싶은 먹이 벼루와 재잘대기 시작한다.

입을 닫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듣고 싶어서

얼굴을 벼루 쪽에 가져가면

벼루와 먹은 고운 향기를 선물로 내어주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각각의 고유한 체취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향기는 쉽사리 맡아지지 않는다.

오롯이 내 것이기 때문에.    


내 방 문만 열면 아주 강력하게 진동한다는 그 묵향.

난초의 향기는 백리를 간다면,

묵향은 천리를 간다고 하는데, 그 향을 맡아본지가 오래다

아마 자연스럽게

나의 또 다른 체취가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나에게 서예는

특이하지도, 별나지도,

그러니까 그다지 ‘특별’ 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하고,

평범하며,

자연스럽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빠의 작품 앞에서, 1993.



마치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의 가장 가까이에 붙어있는 가족처럼.

몸과 마음에 촉촉하게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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