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 배밭은 결국 엄마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는 Ep.2 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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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엄마에게서 소녀 같은 행복이 느껴졌다.
배밭에서 일하실 때의 그 축축한 흙냄새가 아니라, 깔끔하고 멋진 향기가 났다. 향수를 뿌리신 건 아니었지만, 어릴 적 기억 속 엄마의 그 향기 같았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늘 부엌에 계셨다. 직업은 우리 자녀들의 엄마라기보다는 축구선수들의 엄마였다.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늘 디자인하시고, 저렴하지만 고급스러운 밥상을 만들어내시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엄마를 떠올리면 '컬러풀'이 생각난다.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지만 분명 촌스러움은 없었고, 멋쟁이셨다.
엄마의 예술 감성이 다시 살아난 느낌. 두 번째 엄마를 마주하는 지금, 나 역시 더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A3 도화지를 드렸다. 여름과일을 표현해보자며 연습용으로 내민 종이였다.
엄마는 직접 재배해서 가져온 초록 참외를 책상 위에 자리 잡게 하고, 관찰하며 섬세하게 그려내셨다.
그리고 어린 시절을 떠올리시며 생각나는 과일들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하셨다.
연습일 뿐이었는데, 어느새 A3 한 장이 엄마만의 감성으로 표현한 과일들로 가득 찼다.
"이건 연습이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하시며 우린 서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대충이 없으신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늘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며 열정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엄마의 젊음이 느껴졌다.
이어서 드린 A5 캘리그래피 용지에는 다양한 과일 대신 배밭을 빼곡하게 그리셨다.
'왜 또 배밭일까?' 의아했다. '지겹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배가 서운해하더라고. 그래서 배밭을 그렸지."
이 말에 나는 웃음과 함께 마음이 뭉클해졌다.
인생 계획에도 없던 배밭을 일구게 된 긴 사연을 나는 안다. 지긋해하실 줄 알았는데, 엄마 손이 닿은 배라는 열매들이 여전히 그녀만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에게 배가 말을 걸었다는 표현에서 오감이 열린 엄마를 보았다.
정말 제2의 인생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또다른 용기가 어디선가 올라왔다. 시니어 콘텐츠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삶의 회복과 행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확신이 더욱 커졌다.
"나는 창의적이지 않아."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 말한다. 평가 중심의 삶 속에서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그저 표현해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올드팝 프로그램은 성인과 시니어를 위한 회복이 일어나길 바라며 만들었다. 아이처럼 다시 놀아보고, 손으로 만들며 감각을 깨우고, 나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는 순간, 삶을 새롭게 바라볼 힘이 생긴다.
결과보다 과정, 작품보다 순간.
올드팝에서 각자만의 개성이 나타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자란다.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행복을 나누고 싶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