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여름과일,
까꾸로 참외

Ep.03 —망설임 속에서 피어난 기억

by 행복가득한나

(이 이야기는 Ep.1 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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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이 이어졌다.

"선생님, 오늘은 무엇을 하나요?"

"오늘은 나만의 여름 과일을 표현해 보는 시간이예요""여름과일은 수박, 참외가 있지."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쉽게 손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연습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 a3종이를 앞에 두었는데, 한참을 머뭇거리시고 생각에 잠기셨다.

그러다,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릴 적 외삼촌 집 과수원에서 참외와 수박을 서리하러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과수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잠들었던 기억.

이 과수원 이야기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알츠하이머 환자이기에 반복되는 이야기일 수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루하지 않았다. (마주앉은 엄마는 알겠다며 핀잔을 주시긴 하셨지만..^^)

오히려 정말 행복했던 순간을 꺼내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현재보다 더 큰 행복감을 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스쳤다.


작은 자신감을 심다


“나는 참외를 잘 못 그려.”

아빠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인조이풀에서는 부정어를 거부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작은 시도를 권했다.

돌 하나를 드리고, 그 돌을 따라 라인을 그려보시게 했다. 단순한 활동이었지만, 선을 긋는 순간 손끝이 풀리고 마음도 조금 열린 듯했어요.

“어! 이게 신기하다! 무슨 작품 같아! “라며 웃음을 지으셨다. 작은 성공이 자신감이 되어 다시 도전할 힘이 생기신 것 같았다.



까꾸로 참외


잠시 후, 아빠의 기억 속 과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릴 땐 참외 꼭지가 거꾸로 나 있어서 ‘까꾸로 참외’라고 불렀지.”

사투리가 묻어난 그 말속에는 어린 날의 추억이 배어 있었다.


“호박처럼 생겼고, 노란색에 초록 줄무늬가 있었어.”

그 기억을 더듬으며 오일 파스텔을 고르셨다.

한 줄, 한 색을 칠하는 데에도 긴 시간이 걸렸지만

조심스럽게 선을 따라가며 노란 참외가 조금씩 피어났다.



사라질 듯, 다시 살아난 순간

중간중간 고민에 잠기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계시기도 했다. 한동안은 선조차 그리지 않고 멈춰 계셨다.

그러나 사라질 듯 흐려진 기억은, 결국 다시 살아나 종이 위에 자리했다.

완성된 노란 참외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잊혀질 뻔한 기억에서 되살아난 그의 삶에 한 조각이었다.

그리고 초긍정이었던 그가 나이가 들어가며 자꾸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쌓여져 가는 상황이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증거가 되었다.


두번째 만남을 가지고, 나는 조용히 기록을 했다. (이후 더 쓸 수 있는 소재들이 많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까꾸로참외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어 재미있었고 까꾸로참외의 꼭지를 너무 잘 표현해 주어서 같이 감탄하는 시간도 좋았다.

보이지 않는 기억들을 꺼내기 위해 큰 용기를 내고 있는 아빠를 보며, 큰 박수를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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