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트리거

로맨스를 못 쓰는 작가가 로맨스에 빠지다.

by INK


■ 트리거(Trigger)는 총의 방아쇠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특정 사건이나 행동을 유발하거나 촉발하는 계기나 도화선을 뜻한다 ■



8화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연락처라도 좀 물어보고 하지... 하며, 작은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응원을 보내주실 것 같다.

내가 너무 소극적이고 저 자세로 나오는 바람에 측은지심을 유발했을 것이리라.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연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나의 요즘 이런 사연은 매일 가장 빠른 뉴스로 여러분들께 찾아가고 있다.

글은 쓰고 있지만 항시, 업로드하기가 조심스럽다.

언젠가 그녀가 분명 읽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어느 때 보다 그녀의 방송이 기다려진다.

역시, 밤 아홉 시에 시작하겠지?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만약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나 역시 그녀가 아홉 시에 방송을 시작할 테니, 최소한 한 시간 전부터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심한 척 시간을 달려, 아홉 시 반이나 열 시쯤 조심스럽게 그녀의 책방에 노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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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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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조금의 발전이 있었다.

그게 무엇이냐!

OO님에게 내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이것을 일종의 신호. 트리거(Trigger)라 부르기로 했다.


사실 OO님은 항상 저작권 문제 때문에, 리딩을 할 때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을 자신이 직접 글을 써서 리딩하는 것으로 대처하려고 하셨단다.

아이디어는 샘솟는데, 글이 잘 안 써진다고 하셨고, 내가 쓰윽 말을 붙였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OO님은 흔쾌히 승낙을 하셨고, 방송에서 얘기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만의 고민을 늘어놓아 주셨다.


와...

듣기만 해도 이건 쉽지가 않다.

원래 ‘글’ 이란건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야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위말해 이야기가 산을 헤맨다.

시나리오로 얘기하자면 로그라인과 시놉시스가 필수이다. 그래야 한 가지의 주제로 쭉- 밀고 나갈 수 있으며, 로그라인이 나침반 역할을 한다면, 시놉시는 지도다.

길을 잃고 산을 헤매지 않으려면 꼭 있어야 하는 두 가지의 요소다.


그런데 OO님은 난독증이다.


단어도 어렵고 문장도 느리고, 게다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의 자존감은 바닥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OO님은 아이디어도 좋고 감각도 좋다. 상상력도 풍부하며 남을 재미있게 해주는 힘도 있다.

머리가 좋아서 상상력이 춤을 춘다.

근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지가 너무 많다.

난독증과 단어에 대한 불안감은 한 문장을 쓰는 데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쓰다가 멈춘다.

그리고 또 다른 걸 쓰다가 멈춘다.

결국 미완성...


각설하고-


정확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밀리의 서재에 있는 OO님의 글을 필사해 보았다.

어후, 시간도 오래 걸렸고 너무 힘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글에 자꾸 손이 갔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려 했으나, 글이 공개되는 순간 그녀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느낌만 설명하자면

■ 중복되는 단어의 사용 : 이를테면 늙은 노파 라던지(그냥 노파라고 하면 된다)

■ 매끄럽지 못한 문장의 연결등...

이는 난독증이 있는 그녀의 잘못이 아닌, 그녀가 당면한 어려움이고 숙제일 뿐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OO님은 구조형 서사가 없으면 단편도 완주하기 힘들다.

개념을 설명하고, 이론을 말해주고 작업 용어를 설명하고...

이런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확실한 흐름 하나만 심어주고 전체적으로 리라이팅 하면서 같이 손 보면 된다.

이제 OO님에게 맞춤형 강의를 해 주고, 멋진 단편 하나를 완성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린 얼마나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는 글쓰기의 시작을 시나리오로 시작했다.

그리고, 웹소설과 소설을 쓰기 시작하며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시나리오는 철저하게 보여주는 산문이다. 그런데, 소설도 그런 결로 써버렸다는 것.

혹자는 읽으면서 눈에 장면이 떠오른다고 재밌게 읽으시는가 하면

순수문학의 결을 원하시는 분들은, 작가가 독자의 멱살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고 비난했다. 도대체가 어디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하며...


하지만 난 도저히 그런 나의 습관을 고치지 못했고, 지금도 눈에 보이는 글을 쓰고 있다.

대신, 처음부터 멱살캐리는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내가 원할 때만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다지 바쁘지도 않은 세상에 바쁜 것처럼 short 만 찾는 현대인에게

내 글은 점점 먹힐 것이라 확신한다.


또, 각설하고-


이런 내가 과연... OO님께 올바른 글쓰기를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어느 정도 있다.

그래서 난, 단 한 사람을 위해 여러 권의 작법서를 결제했고 그 책들이 집에 오면 OO님을 위한 맞춤 커리큘럼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소개에 고작 1년 차 작가라고 해서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이 나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누가 누굴 가르친다는 거야 지금? 하면서 말이다.


IN.K라는 필명으로 10개월 차다.

난 필명이 여러 개다.

각 분야에 맞는 필명이 있고,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결과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각기 다른 필명이지만, 본명으로 저작권 등록된 소설과 시나리오는 스무 편이 넘고, 그중 작가들 또는 지망생들 사이에 말만 하면 아는 유명 공모전 당선작들도 있다.


요즘 말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


나는 다중 인격 장애를 앓고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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